만들어도 팔지 못한다면? 헛일이다. 재료값, 인건비, 시간만 날리는 셈이다. 때문에 잘 파는 기술이 각광받고 있다. 각종 공산품의 홍수 속에 '잘 파는 기술'은 기업을 살리는 힘이 되고 있다. 이번주 '일터'는 대구의 영업맨 모임인 '대영회' 사람들을 찾아갔다. '실적'에 운명을 걸고 있는 그들은 힘들지만 영업만큼 수명이 긴 직업도 없다고 자랑했다.
◆"영업직은 평생직"
대영회는 20여 명의 회원들로 구성돼 있다. 수도권에 본사를 둔 기업의 대구경북 지사장들이 주축이다. 금복주 등 지역 기업의 영업책임자도 참여하고 있다. 흰머리가 제법 보이는 40, 50대가 대다수.
"외환위기가 터지고 수많은 샐러리맨들이 일터에서 쫓겨났지만 영업맨들은 별로 찾아볼 수 없었지요. 회사가 어려우면 관리직이 최우선 살생부에 오르지만 영업맨들은 그렇지 않아요. 설사 다니던 회사가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해도 곧장 새 일터를 구하죠. 파는 기술이 있으니까요." 대영회 사람들은 영업맨들의 '강한 생존력'부터 입에 올렸다.
대영회 초기 멤버인 금복주 김광호 이사. 그는 이달 1일 '월급쟁이의 별'인 이사에 올랐다. 입사때부터 27년간 영업현장에만 있다가 영업직으로는 이례적으로 '별'을 달았다. 열심히만 한다면 '변수'가 가장 적은 것이 영업이라고 그는 말했다.
대영회 회장인 도국종 (주)경북유통체인본부 대표는 현재의 직장이 5번째 일터다. 이전에 대기업 4곳을 옮겨다니며 영업맨으로 뛰었다. 그는 언제라도 새 직장을 구할 자신이 있다고 했다.
"영업맨들에게 평생 직장은 없어도 평생 직업은 있어요. 바로 영업이죠. 우리는 애사심이라는 말 대신 애직심(愛職心)이란 표현을 써요. 사실 영업이란 것이 어느 기업에서든 능력 발휘할 수 있는 길이 비슷비슷해요. 여기서 통하면 저기서도 통하죠. 그래서 우리는 직장 걱정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에요. 확실한 기술을 갖고 있으니 어떤 조직이든 적응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도 회장은 나이가 들어도 회사가 필요로 해서 영업현장에 있는 선배들이 많다고 했다.
남문기 한미전두유 대구지점장도 20년간 해태제과 영업맨으로 있다가 최근 현재 일터로 옮겼다. 그는 관리직 샐러리맨들과는 달리 영업직은 적응기간이란 것이 없다고 했다.
◆실적 뒤에 숨은 애환
금복주 김광호 이사는 1997년 참소주 출시 이후 하루 7병씩 소주를 마신 적이 셀 수 없을 정도라고 했다. 영업을 위해서는 몸을 사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석호춘 한국타이어 대구지점장은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영업맨으로 나온 이후 담배를 늘 지니고 산다. 접대용이다.
"제가 담배를 피우지 않으니 처음엔 담배 때문에 실수도 많이 했어요. 너무 오래된 담배는 말라버려 맛이 떨어지는데 저는 그것을 몰랐죠. 상대방에게 담배를 건넸다가 '이 담배 맛 왜 이래'라는 핀잔도 많이 들었습니다. 영업맨은 항상 상대를 편하게 해줘야 하는데 담배 때문에 불편하게 만든 적이 많습니다." 기술직으로 입사, 10년 만에 영업직으로 나왔다는 석 지점장은 늘 상대를 대접하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가 적지 않다고 했다.
나화직 삼양사 대구지점장. 그는 '말일(월말 마감일을 뜻하는 말)'은 피를 말리는 날이라고 했다. 마감날 전국의 실적이 종합, 게시되니 피가 마를 수밖에 없다는 것.
"실적이 곧 인격입니다. 영업맨들에겐 이 말이 딱 맞습니다. 아무리 성격좋은 사람이라도 실적이 나쁘면 형편없는 사람이 되죠. 그것이 영업세계 현실입니다. '말일' 혈압이 너무 올라 그날이 인생 말일 된 사람도 있어요.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말일의 고통을 모를 겁니다." 나 지점장은 대구 경제상황이 나빠 걱정이라고 했다. 영업맨들은 요즘 젊은이들이 영업직 지원을 마다하는 상황도 안타깝다고 했다. 도전하는 삶을 싫어한다는 것. 하루이틀 해보더니 나간다는 말도 없이 연락을 끊어버리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우리가 제일 싫어하는 노래가사가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없는 이 발길…'입니다. 정처없이 걸으면 안 돼요. 목표를 갖고 찾아가 뚫어내야죠. 하면 됩니다. 안 된다는 선입관부터 버려야 합니다." 대영회 사람들은 영업맨들의 어깨에 기업의 생존이 달려 있다고 했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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