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61년간 수절한 신옥선 할머니"남편 혼령같은 군사우편 14통"

"이젠 생사라도 알았으면…"

"이제나 올까 한 해 두 해 기다려 온 게 벌써 61년이란 세월이 흘렀어. 해방 직전 남편이 중국의 전투현장에서 보내온 군사우편 14장은 남편과도 같은 존재야…".

일제 강점기 때인 1944년 5월 결혼, 1개월여 만에 남편이 강제 징용으로 끌려간 뒤 61년 동안 생사를 모른 채 군사우편 14장만 고히 간직하며 살아 온 신옥선(79.김천시 지례면 도곡3리) 할머니.

할아버지 이야기가 나오자 할머니는 금세 눈시울이 붉어진다. 장롱 속에 고히 보관중인 군사우편과 남편이 즐겨 읽던 일본 소설책 한 권을 끄집어 낸 할머니는 "만약 전사 통보라도 있었다면 남편 뒤를 따랐던지 아니면 다른 삶을 살았을는지 알수 없는 일이지만 생사 확인이 안되니 그게 더 미치겠더라구. 이젠 사진을 보지 않곤 남편 얼굴 조차 아른거리지만 지금도 어느 순간 남편이 대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아. 그 사람이 좋았던 모양이야"하며 쓴 웃음을 지었다.

신 할머니가 김정수(79) 할아버지와 결혼식을 올린 건 18세 때인 1944년 5월. 이들은 한 마을에서 동갑 내기로 컸다. 당시 서울서 생활 중이었던 김 할아버지는 1년 정도 처가살이 하는 풍습 때문에 신혼의 단꿈을 5일만 맛본 뒤 상경했다.

그런지 1개월여 만에 할아버지는 강제 징용으로 중국으로 끌려가 광복 직전까지 1년여 동안 서신 왕래를 계속하며 못다 한 사랑을 피워 갔다.

"전시 상황이 급박해 오랫 동안 소식 전하지 못했는데 오늘 당신의 소식을 받고 무척 기뻤어요. 당신의 사진 1장만이라도 보내 주세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요 …". 할아버지가 보낸 옥펜으로 촘촘히 내려 쓴 군사우편에는 구구절절 사랑이 듬뿍 담겨 있었다.

1945년 7월에 보내온 군사우편에는 "해방된다니까 곧 내려 갈 수 있을 거예요"라고 적혀 있었다. 이게 마지막 소식이 되고 말았다. 그때부터 한해 두해 기다린 게 61년이나 지났다. 자식이 없었던 신 할머니는 장조카를 입양, 친정에서 줄 곧 살며 시집 일을 빠짐없이 챙겨 왔다. 신 할머니는 "이젠 기다림에 지칠 때도 됐을텐데 아직도 그 사람의 생사 여부가 궁금해. 혹여 사망했다면 언제 그랬는지라도 알았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말했다.

김천·이창희기자 lch888@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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