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량산 깊은 산골 부부 남주연·정분남씨

"신선처럼 사십니다 그려." 드문드문 오고 가는 길손들은 남주연(66)·정분남(58·여) 부부에게 그렇게 말을 건넨다. 봉화군 명호면 청량산 중턱에 유유히 걸린 노부부의 삶은 그랬다. 속세를 이어주는 도구라야 자그마한 배 한척 뿐이다. 자연속에서 살아온 쉽지만은 않은 삶이 도시인들에겐 신선 놀음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부대끼는 사람들이 없으니 좋긴 좋제." 노부부의 살가운 웃음만으로도 삶의 넉넉함이 드러난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엔 사람에 대한 목마름이 그득하다. 처음 보는 사내들에게 덥석 삶은 옥수수를 건네는 걸 보면.

봉화 이나리강을 따라 달리다보면 몽실몽실 연기를 뿜어내는 한옥집 한 채를 만난다. 금새라도 닿을 듯한 지척이지만 사실은 오지. 이나리강이 가로놓여 가는 길이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운좋게 래프팅 보트를 얻어타 강을 건너 보일 듯 말 듯 비좁은 오솔길을 숨이 찰 만큼 오르면 남씨 부부의 집이 한눈에 와닿는다. 남씨는 취재진을 보자마자 "뭣땜시 왔어유"라며 구박(?)부터 한다.

가끔 주변에 놀러와 쓰레기로 산을 더럽히는 몰지각한 여행객들 탓이다. 그래도 모처럼의 사람이 반가운 듯 이내 얼굴이 밝아진다. "그저 사연이랄게 있남. 180년 전 선조 때부터 이곳에 줄곧 살아왔는데."

입이 절로 턱 벌어지는 주위 풍광. 그 비경에 잠시 취해보니 노부부가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굳이 더 묻을 필요가 없었다. "이곳 산세가 무척 좋아 한번씩 절에서 팔라구 하긴 하더라구." 하지만 조상 때부터 쌓아온 질긴 연을 쉽사리 버릴 수 있을까. 30년 전 태풍으로 내려앉은 집도 손수 다시 일으킨 남씨였다.

"그 때 기와 옮기느라 시껍 했지. 기와 하나하나 울러매고 배로 왔다갔다했응께. 도립공원 지역이라 허가가 안나다보니 도로가 없어 그게 좀 불편하제." 그나마 10년 전부터 전기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한 시름을 놓았다.

남씨네는 옛 시골집의 모습이 오롯이 남아있다. 시렁과 잔뜩 쌓아둔 장작더미, 지게, 곡괭이 등. 60, 70년대 고향집의 풍경이다. 집 한켠에는 거의 사라지다시피한 디딜방아까지 자리를 꿰차고 있다. 옛것에 가려 오히려 요즘 것은 발 디딜 틈이 마땅찮다. TV, 냉장고, 선풍기, 라디오 등 지극히 기본적인 것 뿐. 그 흔한 전화기조차 없다. 이도 도시로 떠난 자식들이나 놀러온 사람들이 선물해준 것이다.

요즘 TV보는 재미에 덜 적적하지만 바깥 세상이 맘에 안들기는 도시사람이나 같다. "여야가 맨날 싸우고 요즘 되는게 뭐있어. 집착 없이 순리대로 살아야지. 어차피 사람은 한길을 가는데 서로 헐뜯고 할 필요가 뭐 있노." 유난히 낯가림이 심해 침묵하던 부인 정씨도 거든다. "그런 꼴 안보니까 이곳에 사는게 훨 편하지예."

남씨 부부는 쌀을 제외하고는 웬만한 것은 직접 만들어 낸다. 식수까지도 개울물을 끌어다 쓴다. 인근에는 남씨 부부가 알알이 일군 밭만 1천여평. 옥수수, 대추, 콩, 들깨, 복숭아, 오이, 고추…. 자연학습장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수많은 곡식과 야채를 심어놓았다. 양봉까지도 손을 대지만 하루종일 밭일에 얽매이지는 않는다.

"그저 우리 먹을건데 뭐 그래 신경 쓰겠노. 한번씩 쉬엄쉬엄 산책도 할 겸 가서 작업을 하지." 남씨 부부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시간이란 단어를 잊어버린다.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내려오는 길. 남씨 부부는 애써 배웅을 하겠다며 따라나선다. 부인 정씨가 취재진이 빌려타고 온 래프팅 보트를 보자 "우리 이런 큰 배가 좀 필요한데 하나 주고 가지"라며 넉살을 떤다. 그 소박함이 자꾸 머리 속에 맴돌아 손을 흔드는 남씨 부부에게서 한동안 고개를 떼지 못했다. 전창훈기자 apolonj@imaeil.com 봉화·마경대기자 kdma@imaeil.com 사진 김태형기자 thkim21@imaeil.com

사진 : (위)주위 경관에 잠시 취해보면 이들 노부부가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굳이 묻을 필요가 없다.(아래)점심을 막 끝낸 남씨 부부가 삶은 옥수수를 먹으며 오후 한때를 한가로이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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