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게이트의 현장에서/김석규지음/예지 펴냄
1974년 미 하원 국제기구 소위원회가 개최한 한국 인권에 대한 청문회가 시작됐다. 이른바 프레이저 청문회다. 청문회는 해를 넘겨 1975년에도 계속됐다. 미 대사관 공보관장으로 근무하다 1973년 미국으로 망명했던 이재현이 증언대에 섰다. 그는 한국의 인권상황에 대해 증언했다. 그러던 중 의외의 말이 터져 나왔다. 보고할 일이 있어 대사실에 들렀을 때 김동조 전 미 대사가 100달러 짜리 지폐로 뇌물을 준비하는 것을 목격했다는 내용이었다. 70년대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코리아 게이트는 그렇게 해서 시작됐다.
이후 워싱턴 포스트는 한국의 대미 정치로비를 대대적으로 다뤘다. 코리아 게이트 조사는 미 법무성, 상하원 윤리 위원회, 프레이저 소위원회로 확대되어 갔다. 1973년 미국으로 망명한 전 중앙정보부장 김형욱, 통일교 실력자 박보희 등 거물급 인사들이 연일 코리아 케이트 조사를 위한 청문회를 장식했다. 점점 커지기만 하는 코리아 게이트 수습을 위해 결국 미국과 한국 정부가 직접 나서야만 했다. 미국무성으로부터 구속하지 않겠다는 보장을 받은 박동선의 비공개 진술과 김용식 전 대사의 사신을 끝으로 코리아 게이트는 종결 수순을 밟았다.
이 책은 당시 주미대사관 참사관으로 코리아 게이트를 현장에서 지켰던 전직 외교관이 쓴 회고록이다.
저자 김석규는 1964년 주멕시코 3등 서기관으로 외교에 첫발을 디딘 후 미주국장을 지냈으며 2000년 주일본대사를 끝으로 외교관 생활을 마무리 했다. 오랜 세월에 걸친 외교 생활에 대한 회고록인 만큼 코리아 게이트는 그 한 부분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기록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당시는 미국의 대한 군사원조 삭감과 대아시아 정책의 변화로 한미 관계의 격동기였다. 한국내 정치상황에 대한 미국 정가의 비난도 극에 달했고 현지 외교관들의 망명도 잇따르던 시절이었다. 1969년 3선 개헌을 통과시킨 박정희 정권은 몰락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저자는 그러한 징후의 집합체가 미의회 의원들이 연관된 뇌물 스캔들 코리아게이트 였다고 분석한다.
이외에도 저자는 대구와 만주에서의 어린 시절과 멕시코, 이탈리아, 러시아, 일본 등지에서의 외교관 생활을 담았다.
정창룡기자 jc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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