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사면(赦免)

'사면(赦免)'은 형벌권 자체의 전부나 일부를 소멸시키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다. '일반사면'과 '특별사면'으로 나뉜다. 일반사면은 대통령령으로 사면 대상이 되는 범죄의 종류를 지정, 범죄인 개개인을 안 따지고 일괄적으로 행하며 '대사(大赦)'라고도 한다. '특사(特赦)'로 불리기도 하는 특별사면은 범죄자별로 그 대상을 일일이 정하는 사면으로, 형의 선고를 받은 사람에 대해 법무장관 상신으로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베푸는 경우다.

○…군주국가에선 사면이 군주의 특권으로 자비가 베풀어진다고 해서 '은사(恩赦)'라 했다. 근대 입헌민주국가에선 이 제도가 3권 분립 원칙에 위배되는 유제(遺制)로 여겨져 한때 폐지되기도 했다. 하지만 민주국가에서는 나라의 특별한 경사(慶事)가 있을 때나 정치적 이유로 사면을 할 필요성과 합리성이 인정돼 어느 나라든 사면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이 제도를 두고 있다.

○…정부는 광복 60주년을 맞아 422만여 명에게 대규모 사면을 단행한다고 밝혔다. 그 대상자는 열린우리당 정대철 전 고문과 이상수 전 의원, 한나라당 김영일'최돈웅 전 의원, 자민련 김종필 전 고문 등 공안'선거 사범 1천909명,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벌점을 받았거나 운전면허 취소'정지 등 행정처분을 받은 420만7천152명, 일반 형사범 1만2천184명 등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 아들 홍업'홍걸씨도 포함됐다.

○…사면은 각 정권마다 베풀어 왔다.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되거나 남용돼 '검은 역사'라는 비난에도 자유롭기 어렵다. 김영삼 정부 이후 12년간 줄잡아 2천200만여 명이나 사면돼 성인 3명 중 2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이 혜택을 입었다. 비판 여론을 무릅쓰고 단행된 이번엔 1995년 700만여 명, 98년 552만여 명, 2002년 480만여 명에 이은 네 번째 규모로 역시 대사면이다.

○…사면이 반드시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그 정도가 문제다. 이번 사면에는 검은 돈을 거래한 비리 정치인들까지 끼워 넣었다. 그러잖아도 요즘 '법을 지키면 손해'라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 '법 위의 법' 때문에 울분을 터뜨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법관 출신 대통령이 이런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 텐데 왜 밀어붙이기를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인기 끌어올리기 계산이 앞선 '선심 베풀기'라면 지나친 비판일까.

이태수 논설주간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