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축전 좋은 날에 쓴소리 해서 뭣하지만 통일한국을 위한다는 마음에서 한 가지만 짚고가 보자.
지난주 'DJ 정권에서도 4년간 도청을 했다'는 국정원장의 실토가 나왔을 때 뒤늦게나마 전 정권 눈치 안 보고 과감하게 진실을 털어놓은 노무현 개혁 정권의 용기가 가상하다는 느낌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과감하다거나 용기가 가상하다는 모처럼의 좋은 느낌이 싹 가시어 버렸다.
DJ가 병원에 입원하고 나서부터였다. '도청을 근절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한 분이란 걸 하늘이 알고 땅이 안다.'
'김 전 대통령님의 명예를 반드시 지켜 내겠다.'
DJ 측근 인사들의 충성스런 성명으로 착각할만한 이 말들은 DJ 측근이 아닌 열린우리당 의장, 사무총장이 하신 변호의 말씀들이다.
DJ가 도청을 지시했다거나 보고를 받았다고는 아무도 단정할 수 없고 국정원장도 단정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당과 청와대 쪽 사람들은 제발로 나서서 'DJ는 도청과 관련 없음'을 지레 변호하고 해명하며 목청을 높였다. 누가 뭐랬나. 공연히 역성 들고 나서는 사람들이 되레 이상해 보이는 상황이 됐다. 그들이 침을 튀기며 DJ 변호에 나서고 있을 때 민초의 가슴속에는 이런 생각도 든다. '4년간 명색 국민의 정부를 통치하면서 직속 국가정보기관이 국민과 언론'야당인사를 대상으로 도청해 온 것도 모르고 있었다면 지도자로서는 법당 뒤에서 돌았느냐는 비판도 들을 수 있지 않으냐'고. 더구나 하지 말라고 지시했음에도 졸병들이 제멋대로 도청하고 장난쳤다면 지도자 말씀에 영(令)이 서지 않았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 리더십 부재를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DJ로서는 병실에 앉아서 황송해하는 진사 사절에게 '고맙다'고만 할 게 아니라 '도청 사실은 정말 몰랐지만 내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벌써 나의 부덕함이요 하지 말랬는데도 내 말을 안 따른 것이라면 그 역시 나의 지도력이 모자란 탓으로 국민들께 실망을 드린 허물이 크다'고 말했어야 했다. 더 볼썽사나운 쪽은 DJ보다 노무현 진영 쪽이다. 도청 사실을 밝힐 때는 언제고 금세 돌아서서 줄줄이 해명 나서는 건 무슨 심사인가.
마치 왕조시대 상왕(上王)의 지난 치적에 입댔다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자 왕과 조정대신이 나서서 '고정하옵시고 진노를 거두소서'하는 모양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일 정도다.
도청 사건이 상식과는 거꾸로 굴러가고 있는꼴이다.
상식이 거꾸로 된 더 이상한 눈치 보기는 또 있다. 어제 경사스런 8'15통일축전 축구 경기장에서 태극기도 흔들지 말고 '대~한민국'응원 소리도 못 내게 한 게 그렇다.
북한 지도자 동지의 심기가 불편해질 것 같아눈치 본 때문인가.
그게 아니라면 대명천지 자주국가의 광복 행사 축하 잔치판에서 제 나라 국기도 못 흔들고 부르고 싶은 응원 구호도 못 부른 채 쉬쉬~ 주눅들 듯 해야 할 이유가 없다. 좋은 축제날 정치 얘길랑 접어버리고 자유분방, 통일기도 흔들고 태극기도 흔들고 남북축제로 즐기면 될 일이었다. 대~한민국이면 어떻고 '조국통일'이면 어떤가.
북한 지도자의 심기가 대한민국의 정체성 수호보다 더 상위 개념이 될 수 없고 김정일이 대한민국 정부의 상왕(上王)은 더더구나 아니다. 민족 화합과 통일을 위한 대등한 동반자고 협력자일 뿐이다.
정작 살펴야 할 국민의 눈치는 아랑곳 하지 않고 상식에 벗어난 정치적 눈치에만 민감해하는 건 옳지 못하다.
북측 역시 현충원 참배도 이왕 하려거든 분향도 하고 헌화도 제대로 하는 참배를 했으면 통일의 의지가 더 돋보였을 거다. 이 좋은 8'15통일축전에 남북이 다함께 통일한국의 미래로 가고 싶다면 잔눈치 보지 말고 좀 대범하게 가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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