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복 60주년' 전시회장 찾은 日 대학생들

"일 식민지배·위안부 반성…일장기 밟고 태울땐 섭섭"

'한국과 일본 여전히 가깝고도 먼나라.'

지난 12일 오후 5시 대구 중구 대봉동 대백프자라 10층 갤러리 '광복 60주년, 독립운동과 민족광복의 역사' 전시회장. 계명대 교환학생 및 어학당에 한국어를 배우러 온 일본인 4명이 15일 광복절을 앞두고 한국의 아픈 과거를 보러왔다.

안중근 의사가 초대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는 사실은 교과서에서 배웠지만 윤봉길 의사, 백범 김구 등 다른 인물들에 대해선 금시초문이라는 반응.

히로시마에서 온 기느이 레나(22.여.슈도대 영문과 4년)씨는 "윤봉길 의사가 일본 천황의 생일날 수통형 도시락을 던져 상하이파견군 대장, 일본거류민단장을 현장에서 죽였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며 "일본 입장에서 보면 '테러리스트'일 수 있지만 조국을 위해 목숨은 바친 애국자"라고 추켜세웠다. 기느이씨는 한국 독립투쟁사의 주요 인물들의 이름을 수첩에 적었다.

오키나와 출신 나카모토 요헤이(21.류큐대 국제정치 3년)씨는 "오키나와 역시 해방이후 30년 가까이 미국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해방의 기쁨을 조금은 이해한다"며 "일본이 식민지 지배동안 노동착취, 위안부 등 악랄하게 통치한 것은 분명히 반성해야 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전시회장에서 나온 일본 대학생들은 그러나 대구에서 겪은 경험에 빗대 일부 한국인들의 도가 지나친 애국심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1년 3개월째 대구에서 한국말을 배우고 있는 카와카미 마리(24.여.모모야마대 사회학과 졸)씨는 독도문제로 양국간 긴장이 고조됐던 3개월 전 동성로에서 있어던 경험을 털어놨다.

마리씨가 일본인 친구들과 대구백화점 앞을 지나고 있는데 행사를 진행하던 몇몇 한국인이 '일본놈, 쪽바리다!'라며 다가와 '독도는 누구 땅이냐?'라고 물었다는 것. 당시 분위기에 압도당한 한 친구가 '한국땅 맞습니다'라고 답하자 그제서야 모두가 환호성을 지르며 '잘 가라'라고 보내줬다는 것.

로무라 아이(24.여.기타큐슈대 어문학부 졸)씨는 "아무리 타국이지만 국제적인 기본예의는 지켜야 한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아이씨는 지역 한 대학에 갔다 일장기를 짓밟고 태우고 불태우는 것을 목격해 큰 실망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급기야 이날 한 한국 대학생이 '너희나라 국기를 밟아 짓뭉개라!'며 강제로 끌고 가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며 얼굴을 붉혔다.

이들은 "조상들이 한반도를 지배하면서 저질렀던 만행은 국가의 잘못이지만 현재 일본의 젊은 세대를 한꺼번에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 역시 한국 사람 개개인에 대한 악감정은 전혀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일본어 통역을 도우러 나온 김윤희(25.여.계명대학원 일본어전공 석사2년)씨는 "일본 학생 대다수는 과거역사를 잘 알지 못하거나 무관심하다"며 "무조건적인 반일감정은 향후 한.일 관계에 득될 것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대구에 유학 온 일본인 대학생은 계명대 30 여명을 비롯해 경북대, 영남대 등 모두 200∼300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권성훈기자 cdrom@imaeil.com

사진 : 대구에 사는 일본인 대학생 카와카미 마리양, 나카모토 요헤이군, 키누이 레나양, 노무라 아이(왼쪽부터)양이 일제강점기 독립투사들의 사진과 역사자료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일본학생들은 "뒤로 보이는 윤봉길 의사 이름을 처음 들어본다"며 "김구, 안창호 선생도 초.중.고 역사교과서에 기술되지 않아 모른다"고 말했다. 12일 대백프라자 갤러리. 정운철기자 wo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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