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검찰을 '여권 시녀' 만들려 드는가

도청(盜聽) 사건을 둘러싼 정치권의 작금 움직임이나 전(前) 국정원 간부들의 발언은 '검찰 수사 개입'을 넘어서 간섭으로 비쳐지고 있어 유감이다. 도청 사건이 이런 식으로 흘러가다간 진상 규명은커녕 신'구 정치권의 싸움으로 번져 막말로 죽도 밥도 안 될 판국이다. 지난주 김승규 국정원장은 DJ 정권에서도 도청이 이뤄졌다고 고백했다. 그러자 DJ가 신병 치료차 입원하면서 측근을 통해 도청의 피해자가 가해자로 전락한 참담한 심정이라면서 현 정권에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그러자 청와대나 여권에선 호남 민심 이반을 걱정, 부랴부랴 DJ 달래기에 나선 모양새는 가관(可觀)이다.

"음모는 없었다" "국정원이 발표를 다시 해야 한다" 하더니 급기야 DJ 정권 때 신건 전 국정원장은 "합법 감청은 있었지만 도청은 없었다"고 했다.

이는 김승규 국정원장의 발표가 잘못됐다는 얘기이자 검찰 수사를 우회적으로 저지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도청의 진상은 국정원의 발표로 끝날 일이 아니다. 검찰이 그 진위 여부를 수사해 봐야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여권이 마치 모든 진상을 알고 있기나 한 것처럼 하는 행태는 검찰 수사에 밤 놔라 대추 놔라 하는 식이다.

더욱이 'DJ 정권 때도 도청'이란 한 마디에 정치권이 벌집을 쑤셔 놓은 듯 야단법석인데 과연 그 내용을 모두 공개했을 때의 파장은 어떠하겠는가. '공개 특별법'을 추진하고 있는 여권의 이 모순된 행태에 국민만 어리둥절할 뿐이다. DJ만 건드리지 말고 다른 모든 거 까발려도 괜찮다는 식이 아닌가. 진상 규명의 주체도 검찰이고, 내용 공개나 수사 여부도 진상 규명을 바탕으로 합법 절차에 따라 해야하는 것도 검찰 몫이다. 검찰을 '여권 시녀'로 만들 작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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