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알려진 곳 숨은 이야기] 일제때 강제 개명당한 논실·오동마을

일제는 한민족 정기를 끊기 위해 한반도 산하에 쇠말뚝을 받고 창씨개명으로 민족혼을 말살했다. 또 일제에 대항했다는 이유로 마을이름을 송두리째 바꿔버리기도 했다.

일제 때 답곡(畓谷)으로 불렸던 영천시 고경면 논실(論瑟)마을과 오(梧)리로 불렸던 영천시 화북면 오동(梧桐)마을이 대표적인 예. 두 마을은 한일합방 4년 뒤인 1914년에 일제에 의해 강제로 이름을 빼앗겼다가 1995년 일제잔재 청산 때 '지명 되찾아주기 운동'의 일환으로 80여년 만에 이름을 되찾은 곳이다.이처럼 영천지역의 작은마을에 불과한 논실마을을 일제가 강제로 이름을 바꾼 것은 임진왜란(壬辰倭亂) 때의 오랜 원한 때문.

임진왜란 발발 당시 논실마을에는 노곡(魯谷) 김귀희(金貴希 ?~1626년) 장군이 있었다. 1591년(선조24년) 장사군관으로 발탁된 노곡 장군은 경상좌도 병마절도사 이각(李珏)의 막료에서 왜적과 싸웠으나 거듭 패하자 의병을 모았다.

논실마을은 마을을 중심으로 임금을 모신다는 뜻의 어림산(御臨山)이 학 날개처럼 감싸고 있다. 마을이 주둥이가 작은 항아리처럼 생겨 외부에서는 마을의 존재조차 알 수 없는 천혜의 요새였다. 지략과 용맹을 겸비한 노곡 장군은 많은 수의 왜적과 상대하려면 전면전보다 게릴라전으로 맞서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해 어림산을 일대로 왜적의 보급로와 퇴각로를 차단해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왜적들은 부산포로 퇴각하기 위해 가장 인적이 드문 논실마을을 퇴각로로 택했으나 오히려 호랑이 굴로 찾아 들어간 격이었다. 노곡 장군은 야간에 왜적들을 공격할 때 피아(彼我)를 구분하기 어렵자 아군끼리의 공격과 방어, 후퇴 등 신호를 비파로 주고받았다.

이때부터 이 마을은 왜적을 물리치는 논의를 했다는 뜻의 논할 논(論)자와 비파로 신호를 주고받아 비파 슬(瑟), 논슬(논실)이라 불렸다. 이같은 구원(舊怨)으로 일제는 한일합방 후 치욕의 역사를 없애기 위해 논실마을을 불리는 대로 논 답(沓) 계곡 곡(谷)자로 표기, 답곡마을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름이 바뀐 후 마을에 불상사가 끊이지 않았다.노곡장군의 11대손 김호연(74)씨는 "이름이 바뀐 뒤부터는 마을 젊은이들에게 불상사가 끊이지 않았으며, 이로인해 마을을 떠나는 사람이 많았으나 이름을 되찾은 뒤부터는 마을이 평안해졌다"고 말했다.

김영(金寧)김씨의 집성촌인 논실마을에는 김귀희 장군을 중시조(中始祖)로 모시고 그를 기리는 사당(충효당)을 두고 있다. 이 공으로 임진왜란 후 선조는 김귀희 장군에게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라는 벼슬을 내리고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2등에 책록했다.

논실마을과 달리 오동(梧桐)마을은 지기(地氣)가 좋아 위인들이 많이 나온다는 풍수설에 의해 마을이름이 강제개명 당했다.오동마을은 마을 뒤편의 봉황산(鳳凰山)을 병풍처럼 두고 마을이 형성됐다해서 한때 봉하리(鳳下里)로 불렸다.

봉하리가 오동마을로 불린 연대는 확실하지 않지만 봉황이 오동나무에만 둥지를 튼다는 의미로 걸출한 인물이 태어나기를 바라는 소망에서 오동마을로 불려진 것으로 추정된다.특히 마을 사람들은 소망 성취를 위해 속이 빈 오동나무를 본 따 마을 한 가운데 공터를 유지해 오동나무의 숨골을 만들었으며, 지금도 이 전래는 계속돼 마을 중간중간에 한 필지씩 건너 집을 짓고 있다.

이같은 주민들의 염원이 통했는 지 불과 수백여 호가 모여사는 이 마을에는 위인들이 많이 탄생했다.조선 중종 때 학자 안우곤(安遇坤) 선생과 광해군 때의 안응의 선생, 인조시대 문인 안진경·진성 형제 등 대학자들 뿐아니라 광복군에 가입·무장투쟁에 앞장섰던 이진영(1902~1950년)·이원대 선생이 배출됐고, 이육사 선생의 처가(妻家)도 이곳이다.

영천문화원 전민욱 사무국장은 "오동은 오동나무 오(梧)와 오동나무 동(桐)을 함께 쓰면서 풍수학상 음양(陰陽)의 조화를 맞췄다"면서 "일제는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오동마을 지명에서 오동 동(桐)자를 빼버리고 오(梧)리로 강제 개명해 위인 탄생을 견제했다"고 말했다. 영천·이채수기자cslee@imaeim.com

사진 : 일제 강점기 때 강제로 개명 당한 논실마을은 제 이름을 80여년만에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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