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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대구가 본향인 사람들

성씨(姓氏)가 일반화되기 시작하던 신라 말에서 고려 초까지 대구는 신라 신문왕이 수도를 이곳으로 옮기려 했던 일 이외 역사적으로 크게 주목받지 못한 한적한 고을에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경주, 나주 등 당시 큰 도읍들과 달리 대구를 관향(貫鄕)으로 하는 성씨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대구로 바로 표기하거나 또는 별호(別號) 및 속현(屬縣)의 이름을 관향으로 한 성씨는 모두 8개, 그와 달리 원래는 대구가 세거지였으나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다른 고장을 관향으로 쓰는 성씨가 1개 등 대체로 9개 성씨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구 서(徐)씨와 대구 빈(賓)씨를 제외하고 하(夏), 배(裴), 서(徐)씨는 대구의 별칭인 달성(達城)을, 이(李)씨는 하빈(河濱)을, 나(羅)씨는 수성(壽城)을, 곽(郭)씨는 현풍(玄風)을 관향으로 사용하고 있다. 북구 읍내동 일대의 옛 이름 팔거현이 세거지였으나 이 지역이 고려 때 성주로 편입돼 성주를 관향으로 바꾼 도(都)씨 등 각기 대구와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대구가 알려지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아쉽다.

뿐만 아니라 이들 가문에서 자라나는 후세들은 오랜 역사와 전통이 빛나는 도시이자 국난극복의 전초기지였던 대구가 선조들이 태어난 곳이라는 사실을 잘 모를 것 같아 미래 사회의 주역이 될 그들에게 대구를 더 가깝게 다가가도록 하기 위해 각 문중마다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이왕이면 관향을 대구로 바꾸면 어떨까 하고 감히 제안해 본다.

시 역시 전국 방방곡곡에 흩어져 살고 있는 수많은 출향민들이 대구에 대해 더욱 애정을 가지도록 각 문중의 시조(始祖) 등 역사적인 인물과 관련된 유적 가꾸기와 이들의 뿌리 찾기 운동을 지원해 그들이 잊고 지내던 선조의 고향 찾기를 통해 대구의 가치를 한단계 높였으면 한다.

실례로 중국계 귀화인으로 대구 문풍 진작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생각되는 분이자 대구지역 최초 과거 합격자인 빈우광(賓宇光)을 시조로 하는 대구 빈씨(賓氏)는 종전 밀양, 수성, 남원, 영광, 의성 등으로 본관을 나눠 불렀으나 최근 대구로 통합했다.

달구벌얼찾기모임 대표 이정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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