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탐욕과 도덕불감증'가치도착증에 빠져 있는 느낌이다. 물불을 가리지 않고 돈과 명예와 권력을 좇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예의와 아부, 선물과 뇌물을 구별하지 않거나 못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동서고금을 통해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더러운 물과 깨끗한 물이 함께 흐르기는 했다. 그런데 어느 쪽이 큰 흐름인가가 문제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아무리 봐도 '남들이 어떠하든'이 아니라 '남들이 다 하는데'라는 풍조가 큰 물줄기를 이루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그 큰 물줄기는 바뀌어야 한다. 도덕군자의 말처럼 들릴지 모르겠으나, 한 사람 한 사람이 깨끗한 물에 합류한다면 점차 청류(淸流)의 시대로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특히 오늘날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진부한 속담이 새삼스럽고 소중한 일깨움으로 다가온다.
세상 만물은 '극성' 뒤에 제자리로 돌아가는 관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달이 차면 기울고, 꽃이 피면 어김없이 지는 법이다. 이제 우리 사회도 썩을 대로 썩었으니 그 다음 차례가 된 게 아닐는지…. 그러기를 기대하는 게 고목에 새 잎이 돋아나고 꽃도 피기를 바라는 바와 다름없기만 한 것일까. 정녕 그러할까.
오늘의 정부나 정치권을 바라보면 암담하기 그지없다. 어느 한 구석을 봐도 사정이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최근 신문 지면을 장식하는 일련의 사건들이 그렇듯이, 큰일을 하거나 가진 계층일수록 실망감을 넘어 절망감을 안겨 준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는 남을 생각지도 않는다. 남을 이용하고 괴롭히는 일마저 서슴지 않는다. 게다가 마음대로 안 될 때는 억지와 궤변을 늘어놓기까지 한다. 거짓이 거짓을 낳고, 그 말들이 그런 말들을 '구르는 눈덩이'로 만들며, 그 소용돌이 속에서 국민은 깊은 시름을 놓아볼 날이 없을 지경이다.
조선조의 실학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은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에 대해 논한 바 있다. 군자에게는 귀하게 되려고 하는 귀욕(貴慾)이 있고, 소인에겐 부자가 되고자 하는 부욕(富慾)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전자는 귀욕을 키워 귀족이, 후자는 부욕을 충족시켜 소민(小民)이 된다고 했다.
지나친 비관인지는 모르겠으나, 군자의 자리에 있는 경우라도 군자로 보이지 않고 소인으로 보인다면 비극이다. 당사자를 위해서도, 백성들을 위해서도 그렇다. '귀하다'는 말은 흔치 않다는 뜻을 품고 있으므로 귀욕의 실현은 '쉽지 않다'가 전제돼 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군자에게는 세속적인 이해관계를 뛰어넘은 극기(克己)와 절제(節制)가 주요 조건이 아닐 수 없다.
선현들은 인'의'예'지(仁'義'禮'智)를 각별히 받들었다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안다. 그 중에서도 모든 존재의 생(生)이 실현되도록 돕는 인(仁)을 최고의 덕목으로 쳤다.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義), 판단한 결과를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규범(禮), 사물을 파악하는 지혜(智)는 모두 인(仁)의 실현을 위한 방법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따라서 군자는 자신의 이기심을 버리고 남을 위하며, 자기와의 싸움에서 자신을 이기고, 절제를 통해 귀욕을 충족시키는 '귀족'이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정치 현실과 현주소는 어떠한가. 한 역사학자가 통탄했듯이, 정치판은 돈과 명예와 권력을 한꺼번에 얻으려는 소인들의 각축장이 되고 있는 것 같다. 도청(盜聽) 정국만 하더라도 그 치부를 여지없이 보여준다. 권력 상부층의 더러워진 물이 아랫물까지 더럽히는 탐욕의 경기장을 방불케 한다. 감추고 터뜨리는 행태들도 그렇지만, 이를 다시 돈'명예'권력 창출로 확대 재생산하려는 '이전투구'의 모습을 보는 마음은 참담하고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나라를 이끄는 사람들은 마땅히 군자를 지향해야 한다. 하지만 과연 자신은 그렇다고 큰소리칠 수 있는 정치인이 어느 정도나 될까. 오로지 '잿밥'에 다름없는 정치적 목적과 권력 창출을 향해 탈법과 부정을 다반사로 저지르는 소인들이 귀족이나 군자 행세를 하고 있는 건 아닐는지…. 그런 '군자 탈 속의 소인'이 아니라 진정으로 나라와 백성들을 깊이 끌어안는 군자와 귀족을 보고 싶다.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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