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상전/수채화가 고찬용씨의 '성하'(盛夏)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지금까지 후회 없이 그려왔다.

창작한다는 자체만으로도 가슴이 늘 설렌다.

나는 풍경화를 즐겨 그린다. 좋은 풍경화를 그리기 위해서 여행을 많이 하는데,

가는 곳마다 우리나라 강산은 참 아름답다.

자그마한 장난감 같은 산과 실개천, 낮은 야산 자락 끝에 조롱조롱 매달린 조그만 집들은 다른 나라의 지형과 기후 풍토에서는 좀처럼 발견하기 힘든 장면이다.

스케치 여행 중에 정말 마음에 드는 좋은 구도를 만나는 것은 행운이다.

요즈음에는 꽤 먼 거리를 이동해야 마음에 드는 좋은 구도를 만나게 된다.

한국적인 초가는 이미 간데없고 잘 생긴 나무 하나 찾기도 쉽지가 않다.

국토 개발계획으로 좋은 길이 많이 생겨, 이동은 편해졌지만 무언가 몹시 허전하다.

불과 몇 년 전에 가서 발견하고 아껴 놓았던 좋은 풍경들이 자꾸 사라져 버리는 것이 서운하다.

의식주 생활은 편리해졌을지 모르겠으나 정서적으로 안정된 삶을 누리기엔 너무 삭막한 듯하다.

아담하고 조용하던 예쁜 마을 앞뒤로 옹벽을 쌓은 듯 도로가 생기고

동네에 남은 몇 안 되는 노인들이 도로 밑 컴컴한 터널을 오가는 것을 보며

뭔가 우울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아직도 늦지는 않았다. 이제부터라도 한국적 정서와 한국적 전통과 문화를 살리고

우리 기후 풍토에 꼭 맞는 개발로, 우리 후손들이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누리게 해야 할 것이다.

내가 그렸던 아름다운 풍경들을 우리 후손들도 감상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 아닐까.

글·그림 고찬용

성하(58×40㎝·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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