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해방 후 60년대 초까지

광복 직후 대구의 주력산업은 직물업, 정미업, 철공소 정도. 대부분 영세했고 원료·전력 부족 등으로 35%쯤 가동될 뿐이었다. 1948년 원료난이 해소되면서 직물업계를 중심으로 활기를 띠게 됐고 240여 개이던 공장이 1950년 1천447개, 종업원 1만4천여 명으로 비약적 성장세를 이뤘다.

6·25로 경인지역의 방직공장들이 파괴되면서 대구는 직물공업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일제가 만든 조선방직 대구공장, 지역 자본이 최초로 세운 삼호방직, 내외방직 등이 3대 방직공장으로 꼽혔다.

6·25 직후 우리나라 직물공업의 60%를 차지하면서 섬유도시로 성장했다. 1956년 말 대구 1천600여 개 공장 중 섬유공장은 82%. 면방직, 모방직 공업 등이 중심이었다.

1956년 제일모직이 공장 가동을 시작했으며 '골덴텍스' 상표의 제품이 출하됐다. 또 '나일론'이 선풍적 인기를 얻었는데 코오롱의 전신인 한국나이론이 활발하게 가동됐다. 내의 양말 등을 만드는 메리야스 공업도 발전하기 시작했다. 60년대 초 인쇄, 성냥, 비누, 제분, 고무, 양조 등 화학공업도 발전하기 시작했다. 경북인쇄소, 경상제분 대구공장이 유명했다.

수창동, 대신동, 인교동, 동인동 등 중구 지역에는 기계금속공장들이 집중됐는데 조광산업, 선학알루미늄공업, 남선경금속 등이 전국 시장을 석권했다. 산업용 기계를 만드는 건국철공소, 삼남공업사, 아세아산업과 섬유기계 제작업체인 삼성제침, 명성금속공업, 승리기계 등이 있었다. 자동차부품 메이커인 삼립산업도 1954년 4월 설립됐으며 대구철공소, 대본제작소, 평화산업사 등이 활발하게 가동됐다. 화학공업 분야에선 대성연탄이 서울로 진출, 크게 성공했으며 안경테공업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김지석기자 jiseok@imaeil.com (참고:대구상공회의소 대구경제총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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