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시지중 학생들은 여름방학에도 학교에 다닌다. 보충수업이나 자율학습이 아니라 부족한 공부를 메우고 자신의 특기를 계발하는 또 다른 학교다. 스스로 필요해서, 자신이 좋아서 나오는 학교가 지겨울 리 없다. 여기에다 배움이 간절한 학부모와 인근 주민들, 다른 학교 친구들까지 함께하고 있으니 분위기도 그만이다. "학기 중의 학교도 이랬으면 좋겠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수년 내로 대부분의 학교에서 시행될 것으로 보이는 시지중의 교육 프로그램을 들여다봤다.
시지중이 지난 4월부터 운영하고 있는 '방과 후 학교'는 학원으로 가는 학생들의 발걸음을 학교 안에 묶어 두려는 교육부의 정책 연구 프로그램이다. 사교육 수요가 높고 학원이 즐비한 시지 지역의 특성상 시작부터 철저히 준비됐다. 성공을 위해 학교는 개설 과목부터 학생들의 요구를 100% 반영했다. 학교 시설이 미흡하다 싶은 과목은 인근 학교나 스포츠센터, 취미 학원 등의 시설을 활용하고 있다. 강사진에는 학교 교사 외에 지역의 전문가도 대거 포함시켰다.
강사료만 지급하면 되다 보니 수강료는 30시간 기준 5만 원 미만이다. 지역 인사나 학부모가 자원한 과목은 아예 공짜다. 저소득 가정 학생들은 교육비를 학교에서 지원한다. 참여할 마음만 있으면 누구나 부담 없이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수업의 질이 낮은 것은 결코 아니다. 학부모의 수업 참관, 온라인 평가, 학습자와 교사의 대화 등 다양한 방안이 도입됐다. 학부모들은 수강신청에서부터 관리, 평가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학교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4월에 시작된 1기 프로그램이 소문나면서 지난달 25일에 개강한 2기 프로그램에는 수강신청이 몰려들었다. 방학이지만 일요일과 공휴일을 제외한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되는 40여 개 과목에 800여 명이 신청해 여름을 뜨겁게 보내고 있다. 이 가운데 100여 명은 인근의 다른 학교 학생들과 학부모, 지역 주민들이다.
2기에 운영되는 프로그램은 크게 3가지 종류로 나누어진다. 우선 학생들이 부족한 과목을 보충하거나 앞서 배우는 '수준별 보충학습'이 눈에 띈다. 수학, 영어, 과학, 사회 등 4개 과목에 걸쳐 진행되는 보충학습은 수준에 따라 보충-심화형으로 세분화돼 모두 17개 과목이 개설됐다. 기초에서부터 고교 수준, 영재 수업까지 실력껏 공부할 수 있도록 했다.
두 번째 프로그램은 교과와 관련된 특기·적성 수업. 학교 수업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것은 물론 학생들의 지적 능력까지 향상시킬 수 있는 다양한 과목들이 마련됐다. 논술탐구, 신문제작, 일본어, 한자자격증, 영자신문 읽기, 영자매거진 읽기, 영미소설 등으로 필요한 부분에서는 외부 강사도 여럿 참가하고 있다.
세 번째는 컴퓨터, 음악, 체육, 취미 등의 특기·적성 수업으로 학부모와 지역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컴퓨터와 관련해서는 워드, 엑셀 등에 요즘 학생들의 수요를 반영해 프리미어, 디지털 카메라 등도 포함됐다. 음악은 발성·호흡법에서부터 성악, 현악, 사물놀이 등의 과목이 운영되고 있다. 학생과 일반인들의 인기가 가장 높은 과목은 체육과 취미 분야. 체력 단련을 위한 과목으로는 축구, 농구, 탁구, 배드민턴, 검도, 태권도 등에서부터 요가발레, 스포츠댄스, 힙합댄스, 헬스, 볼링, 인라인스케이트 등에 이르기까지 학생들이 좋아하는 종목은 대부분 들어 있다. 취미 분야 역시 서예, 도예, 바둑, 요리, 연극, 공예 등의 일반적인 과목에다 풍선아트, 페이스페인팅, 퀼트, 모델수업, 디지털캠코더, 코스프레 등 인기 프로그램을 망라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프로그램과 질 높은 수업은 사교육비 경감과 학교 교육에 대한 신뢰로 이어지고 있다. 학교 관계자들은 가정과 학교, 지역사회가 교육공동체를 구성해 서로 협력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며 주5일 수업제에 효과적인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이기조 교장은 "방과 후 학교 운영 이후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사교육비 경감 효과가 30%를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학생들의 소질과 적성을 계발하고 저소득층 자녀에게 양질의 학습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말했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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