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속의 한자-허균과 허난설헌

세상의 서룬 사람 수업다 하려니와, *薄命(박명) *紅顔(홍안)이야

날 가타니 또 이실가.

(세상에 설운 사람 많다고 하려니와

운명이 기구한 여자야 나 같은 이가 또 있을까?)

- 허난설헌의'규원가(閨怨歌)' 중에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여류 시인의 한 사람인 허난설헌은 조선 중기 사람으로 그녀의 아버지는 초당 허엽이며, 학자이자 정치가이며 문인(文人)인 허균이 그녀의 아우이다.

허난설헌의 이름은 초희(楚姬)로 난설헌은 그녀의 호(號)이다. 수재로 소문난 오빠들과 동생 사이에서 어깨 너머로 한자를 배웠지만 한 번 익힌 것은 결코 잊지 않았고, 어려운 한학 서적을 거침없이 읽어냈다. 신동으로 일컬어지며 당시 최고의 한시인(漢詩人)의 한 사람이었던 이달에게 시를 배웠다. 15세 무렵 김성립과 결혼하였으나 결혼 생활이 원만하지는 못했고 그녀의 친정 또한 차츰 불행을 겪게 되었다.

이러한 자신의 불행한 처지를 그녀는 글을 쓰며 달랬다. 그러나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여러 가지 고충을 겪고 있는 세상 여인들과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굶주리고 학대받는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을 노래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회의 불합리와 신분 차별에 대해서도 주시하고 있었다. 이러한 그녀의 넓은 안목에 여성 특유의 섬세한 필치와 독특한 감상이 합쳐짐으로써 그녀는 후세대들에게 탁월한 여류시인으로 칭송되고 있다.

그녀가 겨우 스물일곱이라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뒤 그녀가 친정에 남겼던 작품 일부를 동생 허균이 명나라 시인 주지번에게 주어 중국에서 시집《허난설헌》이 간행되어 *激讚(격찬) 받았으며, 1711년에는 일본에서도 간행되어 애송 되었다.

허난설헌의 남동생인 허균은 1594년(선조 27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명나라 사신을 맞아 뛰어난 문장으로 명성을 떨쳤으며 명나라에 다섯 차례나 다녀오면서 천주교 서적을 가져와 천주교를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하기도 하였다. 1617년 폐모론(廢母論)을 주장하는 등 대북파의 일원으로 왕의 신임을 얻었으나, 1618년(광해군 10년) 광해군의 폭정에 항거하여 반란을 계획하다가 발각되어 처형당했다.

그는 누이에 못지않게 시와 문장에 뛰어났으며 소설, 희곡, 비평 등에 *造詣(조예)가 깊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소설인《홍길동전》은 당시 사회제도의 모순을 비판한 작품으로 그의 개혁 사상이 잘 나타난, 조선시대 대표적인 걸작으로 손꼽힌다.

▒한자풀이

1. 薄命(엷을 박, 목숨 명) : 1. 운명이 기구함 2. 목숨이 짧음.

2. 紅顔(붉을 홍, 얼굴 안) : 붉은 얼굴이라는 뜻으로 젊어서 혈색이 좋은 얼굴

3. 激讚(부딪힐 격, 기릴 찬) : 매우 칭찬함

4. 造詣(지을 조, 이를 예) : (학문이나 예술·기술 등) 어떤 분야에 대한 깊은 지식이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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