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후 60년. 우리 영화는 극심한 변화를 겪었다. 독립투사의 삶에서부터 6·25, 이데올로기, 멜로 등으로 끝없이 지평을 넓혀 왔다. 해방 당시 극장수 140개에서 지금은 극장수 357개, 스크린수 1천527개로 팽창했다. 관객 10만을 넘기지 못하던 시절에서 관객 1천만 명을 넘긴 영화들이 나오는 시대가 왔다. 1946년 한 해 4편에 불과하던 우리 영화 제작편수는 2003년 117편으로 성장했다. 1946년 제작된 최인규 감독의 '자유만세'의 제작비는 17만 원, 지난해 '태극기 휘날리며'의 순제작비는 147억 원에 이르렀다. 시대를 풍미했던 영화도 변했다. 60년을 이어온 영화들은 시대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1950년대
이강천의 '아리랑', 홍성기의 '출격명령' 등 전쟁 영화가 홍수를 이뤘으나 한편으로 한국 영화는 양적으로 눈부신 성장을 이뤘다. 1955년 15편이던 우리 영화 제작 편수는 1959년 108편을 기록했다. 이 시기 정비석 원작을 한형모가 각색한 1955년의 '자유부인'은 당시 가장 큰 화제를 몰고 왔던 영화. 대학교수 부인의 춤바람과 제자인 여대생과 사랑을 나누는 교수. 두 사람의 화합을 그린 이 영화는 당시 파격적인 소재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낡은 윤리나 도덕을 깨뜨리려던 '자유부인'은 새로운 시대를 맞으면서 개인의 생활이나 가정사회를 변모시킨 세태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이 영화가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둠으로써 동명의 영화제작이 잇따랐다.
□1960년대
유현목 감독의 '김약국집의 딸들'(원작 박경리), 신상옥의 '벙어리 삼룡이'(원작 나도향) 등 문예영화가 화려한 꽃을 피웠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한국 영화사에서 최루성 영화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김수용 감독의 1965년작 영화 '저 하늘에도 슬픔이'(원작 이윤복)다. 아버지는 노름에 빠져있고, 어머니는 가출한 후 가장 노릇을 하게 된 초등학교 4학년생 이윤복을 통해 세태를 짚었던 이 영화는 60년대 중반 전국을 눈물바다로 몰아넣었다.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이 작품은 지난 70년 고 이상언 감독과 79년 김수용 감독이 리메이크했다. 이후 '미워도 다시 한번'(1968) 으로 한국영화는 최루 영화 전성기를 맞는다.
□1970년대
이 시기 영화계의 최대 화두는 도시화, 산업화 사회의 희생물인 사회 소외계층인 '호스티스'를 주제로 한 영화였다. 작가 최인호와 이장호 감독 두 사람은 1974년 관객 50만 명을 불러들인 전설적인 영화 '별들의 고향'을 만들었다.
첫사랑의 사내에게 버림받은 경아는 슬픔을 딛고 중년의 이만준의 후처로 들어간다. 그러나 임신했던 과거 때문에 헤어지고 동혁이라는 남자에 의해 호스티스로 전락한다. 문오라는 사람 좋은 화가를 알게 된 경아는 그와 동거 생활을 하게 되나 심한 알코올 중독 증세와 자학에 빠진 문오는 그녀를 다시 사랑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떠난다. 그리고 일년이 지난 어느 눈내리는 밤, 길거리에서 발견된 어느 젊은 여자의 죽음. 이후 '영자의 전성시대' 등 70년대를 이끌었던 호스티스 영화의 원조가 되었다.
□1980년대
배창호 감독은 1984년 '깊고 푸른 밤'을 통해 세련된 상업 영화의 극치를 보여줬다. 이 영화가 작품성과 흥행에서 모두 성공을 거두면서 그는 1980년대 후반 영화사를 자신의 시대로 만들었다. 불법 이민한 남자가 영주권을 얻기 위해 재미교포 이혼녀와 계약결혼을 한다. 계약기간이 끝날 즈음 여인은 사랑을 호소하지만 고국의 처자식을 불러들일 꿈에 부푼 남자는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결국 여자는 그를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하고 만다는 줄거리다. '깊고 푸른 밤'은 등장 인물의 패배감과 절망감을 통해 현대 사회의 절망, 패배와 싸우고 있는 개인의 처절한 의식을 다룬 작품으로 각인됐다.
□1990년대
90년대가 저물기 직전 등장한 강제규 감독의 '쉬리'(1999년)는 이후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만들어 내는 원동력이 됐다. 35억 원이라는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제작비를 투입해 한국판 블록버스터의 원조가 됐다. 3주 만에 100만 관객 동원, 총 관객 700만이라는 새 지평을 열었다. 물론 이 기록은 이후 2000년대 새로운 블록버스터들의 등장으로 깨져 버렸지만 '쉬리'는 한국영화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쉬리' 덕분에 1999년 한국 영화는 40%에 육박하는 극장 점유율을 기록했다. 비밀정보기관 OP의 특수요원 유중원(한석규)과 이장길(송강호)이 박무영(최민식)이 이끄는 북한 특수8군단의 테러음모에 맞서 싸운다는 이야기.
□2000년대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2003년 말과 2004년 초 극장가에 내걸리며 나란히 관객 1천만 명 시대를 열었다.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는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두 형제의 드라마틱한 운명을 그린 전쟁 드라마. 대규모 전투 신을 동반한 본격 전쟁 블록버스터로 역대 관객 동원 1위(1천115만 명) 기록을 갖고 있다.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는 한국 근대사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북파 특수공작을 위해 조직된 '684부대'를 모델로 한 영화였다. 관객 1천만 명을 넘긴 이 두 영화를 계기로 한국영화는 지금도 끊임없는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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