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고용허가제 시행 1년 "합법인력 도대체 언제 오나"

대구경북 2천5백명 필요해도 공급은 겨우 779명

산업연수생제에서 파생된 송출 비리, 인권 침해, 불법체류자 증가 등의 문제를 해소하고 체계적으로 외국인 근로자를 관리하기 위해 시작된 고용허가제가 17일로 시행 1년을 맞았다. 그러나 인력 공급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가하면 당초 취지와 달리 외국인 불법 체류자 수가 오히려 증가하는 등 부작용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

성서공단노동조합, 민주노동당 대구시당 등 10여개 시민·사회단체들은 17일 오전 대구지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주노동자 인권과 노동권 확보 보장'을 촉구하고 고용허가제의 문제점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고용허가제가 완전히 자리잡기까지는 아직도 '산 넘어 산'이다.

◆활성화의 걸림돌

고용허가제가 시행된 이후 대구·경북지역 기업들의 외국인 근로자 구인 신청은 7월말까지 824건에= 2천482명에 이른다. 올해 들어 내국인 구인노력 의무기간 단축 등 규제완화에 힘입어 신청이 더욱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고용허가제를 통해 국내에 입국한 외국인 근로자는 333개 사업장의 779명에 불과했다. 수요에 비해 공급은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당장 현장 근로자 인력이 부족한 기업의 입장에서는 공급지연 등에 따른 적재적소의 인력배치가 이뤄지지 않아 불만이 높다.

중소기업 관계자들은 "외국인 구인신청에서 인력배치까지 걸리는 기간이 길어 고용허가제 활성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당장 일손이 급한 기업의 경우 인력난 해소를 위해 일시적으로 불법체류자를 찾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성서공단의 한 자동차부품 회사 관계자는 "당장에 인력이 필요하지만 신청해놓은 외국인 근로자가 한국에 들어오고 제조라인에 투입될 때까지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적기에 인력을 쓸 수 없어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노동부에 따르면 구인 신청에서 인력배치까지 걸리는 기간(도입기간)은 지난해 평균 40여일에서 올 들어서는 지난 1월에 58일, 6월에는 77일까지 늘어났다.

게다가 기업들이 고용허가제를 통해 외국인 근로자를 채용할 경우 국내 노동자와 동등하게 대우해줌으로써 임금이 크게 오른데다 사회보험료 부담 등으로 경쟁력 상실을 우려, 고용허가제의 조기 정착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산업연수생 외국인 근로자 20여명을 고용하고 있는 성서공단내 한 자동차부품제조 회사 관계자는 "일정기간 구인광고를 내고, 맞는 사람이 없을 경우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는 등 조건이 까다롭고 근로자 관리, 감독에도 어려움이 있어 당분간은 산업연수제도를 통해 외국인 근로자를 채용할 것"이라고 했다.

◆인권침해 부추기는 독소조항

외국인 근로자들의 인권이 크게 나아진 것이 없다는 지적이 많다. 고용허가제가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며, 재계약의 권리를 고용주에게만 부여한 법안이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해줄 리 없다는 것.

경산의 한 자동차 부품회사에서 일하는 중국인 체룽(가명·39)씨는 무거운 물건을 나르다 허리를 다쳐 치료를 받는 등 건강이 좋지 않은 상황이어서 사업주에게 주간 근무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야간 근무자가 없어 교대해줄 수 없으니 그대로 일을 하던지 아니면 그만두라는 사업주의 엄포에 아픔을 참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이주노동자는 임금체불, 폭행 등의 직접적인 권익침해와 명백한 법위반의 경우에만 사업장 이동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작업장에서 발생하는 부당한 차별과 폭언, 인격모독 등 일상적인 인권침해를 감내하도록 하고 있다는 것.

성서공단 노동조합 이주노동자공동대책위 김헌주 집행위원장은 "사업장 이동의 제한 또는 매 1년마다 재계약 등의 독소조항들은 노동권과 인권을 억압하는 또 하나의 족쇄가 되고 있다"며 "사측의 계약위반에도 사주가 이탈신고를 하면 바로 불법체류 신분이 되기 때문에 열악한 근무환경 속에서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일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고 했다.

이주노동자인권연대가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하루 평균 노동시간이 12시간 이상이라는 외국인 근로자가 절반 가량이었고, 대부분은 휴일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낮은 임금과 과중한 업무, 그리고 고용주의 폭행 등의 이유로 다른 회사로 이동하고 싶어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63%에 이르는 등 고용허가제가 실시된 이후에도 근로계약 위반과 노동관련법 위반 등 이주노동자 인권문제는 거의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대구외국인근로자선교센터 박순종 목사는 "시행 1년이 지났지만 노동권의 보장과 합리적인 외국인력정책의 운영이라는 고용허가제의 취지는 사라진지 오래고, 이주노동자들의 인권 상황은 날로 악화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고용허가제 도입 이후 불법체류자는 7월말 현재 19만6천578명(전국)으로 지난해 1월 13만6913명보다 43.6% 증가했다. 7월 말 현재 전체 외국인 근로자 수(34만9063명)의 56.3%에 달하는데다 2003년 합법화 조치로 이달말 체류 기간이 만료되는 인력까지 감안하면 불법 체류자 규모는 9월까지 계속 증가할 전망이다.

최두성기자 dscho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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