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북으로 700㎞를 달려 도착한 로카쇼무라(六ろ村)는 평온했다. 북위 41도에 위치한 해변 시골마을은 안개비 때문에 농사조차도 제대로 지을 수 없는 벌판이었다.
그런 로카쇼무라가 최근 생활 환경이 바뀌었다고 지역민들은 말한다. 이곳에 들어선 일본원연(日本原燃)의 원자연료사이클시설 덕분이라 한다. 1만2천 명의 주민은 몇 년째 그 수가 줄지 않고 주민 상당수가 핵 폐기물 처리장에 취업하고 관련 시설들이 들어서 지역의 살림살이가 달라졌다고 기요미 카이츠(海津淸美) 로카쇼무라 기획방재이사는 말해준다. 그렇다면 농촌을 탈출하고 고령화가 심화하고 있는 현실에서 원전 시설은 지역에는 그야말로 황금알인 셈이다.
방사성 폐기물 관리센터(방폐장) 부지선정을 두고 우리 정부는 지난 86년부터 19년째 고민하고 있다. 방사성 폐기물 관리센터 부지 선정 작업이 어떤 거대한 국책사업보다 더 국민적 공론을 거치고 있다고 설명하는 송명재 한수원 원자력 환경기술원장의 인사말이 우리의 현실을 대변해준다.
방폐장. 원자력발전이 있다면 당연히 처리돼야 할 폐기물 중 생활쓰레기급의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처분하려는 정부의 노력이 그때마다 지역민의 반대에 부딪혀 갈등만 키워놨다. 정작 중요한 원자력발전이나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하는 시설이 아닌 고작 발전소 내 작업장의 의류, 덧신 등 저준위 폐기물 처리장 설치를 두고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물론 모든 것을 잃은 것만은 아니다. 지역 간, 지역 내 주민 간 갈등을 불러왔지만 그 대신 이런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배웠다. 이번에 잘 해결되면 오히려 우리의 타협 문화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또 있다. 3천억 원이라는 지원기금과 반입수수료 중 일부, 기타 간접지원비용과 고용효과 등 엄청난 혜택을 덤으로 챙길 수 있게 됐다.
로카쇼무라 원연기지는 84년 구체적인 부지 결정과 시설 입지작업이 펼쳐졌고 92년 시설이 가동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우리가 고민하고 있고 그래서 우리나라 일부 지자체 관계자들이 시찰하러 가는 곳은 전체 시설 중 일부분으로 다른 시설에 비하면 별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 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저장시설이지만 일본 전역의 원자력발전소로부터 수거된 방사성 폐기물이 로카쇼무라로 들어와 매립되기까지 절차는 그야말로 '철통' 그 자체였다.
그곳 로카쇼무라 원연센터는 연간 10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가며 대부분 일본 현지와 아오모리 현민들이라 한다. 그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방사성 폐기물 저장시설보다 올 연말 준공예정인 사용후 연료 재처리시설이나 현재 가동 중인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저장시설과 우라늄농축시설 등에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시설들을 규정대로 운영하고 또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 관람객들로부터 정부의 정책이 신뢰를 얻고 있다는 인상이었다.
로카쇼무라 관리들은 원연과 관련, 반대 여론이 없었느냐는 질문에는 "지금도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들은 외부의 반대 세력에 대해서는 "로카쇼무라의 문제는 로카쇼무라 사람들이 해결한다"며 단호하게 대처한다고 덧붙였다.
원자력발전이 20기를 넘어선 우리나라에서 방폐장 부지 선정작업이 19년째 지지부진하고 있는 현실은 이미 안전성의 문제를 넘어 지역민들의 '정서법'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방폐장뿐 아니라 어떤 시설에 대해서든 누구도 감히 안전성을 100% 보장할 수 없고 어떤 것도 안전을 100% 담보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국민을 믿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원자력발전소가 있고 또 가동 중인 현실에서 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을 설치하지 못한다면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결국 국민이 정부 정책을 불신하도록 만든 책임은 정부 몫이다. 어저께 노무현 대통령의 과거사에 대한 언급이 있었지만 원전 시설과 관련해서도 국민이 공포심을 가질 만큼 위협한 것도 정부였고 보면 국민에 대한 신뢰 회복도 국가의 몫이다. 이번만큼은 국민적 신뢰 위에 합리적인 결론이 날 것을 기대한다.
이경우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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