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차 6자회담이 진통 끝에 결렬은 면하고 13일 만에 휴회하기에 이르렀다. 그나마 다행이고 속히 회담이 계속되기를 기도하는 심정이다. 핵무기는 폭죽 불장난이 아니다. 다시는 민족을 볼모로 무모한 불싸움을 저지르는 일이 없어야 한다.
한겨레와 한반도의 운명을 우리 강산 울타리 안에서 우리끼리 논의하지 못하는 현실이 예나 지금이나 가슴이 아프다. 강대국들이 우리 당사자들은 제쳐놓고 백의민족과 금수강산의 중차대한 과제를 의논하던 2차대전 종전무렵과는 판이하다. 남북한 당국의 대표들이 동등한 자격으로 참석하고 있다는 사실에 격세지감을 느낀다.
13개월의 표류 끝에 다시 열린 6자회담을 우연히 일본 나가사키 지방에서 관심 있게 지켜 보았다. 그곳은 꼭 60년 전 8월 9일 '복스 카'(Bock's Car)라는 이름의 B-29 폭격기가 20kt의 원자폭탄을 투하한 곳이다. 순식간에 4만 명이 사망했다. 산야(山野)가 잿밭으로 변했다.
그 사흘 전인 8월 6일 아침에는 히로시마에서 8만 명의 무고한 생명들이 생화장을 당했다. 방사능에 노출된 20여만 명이 처절하게 죽어갔고 피폭자들의 2, 3세들은 오늘까지 형언할 수 없는 진통을 경험하고 있다.
핵무기의 사용으로 2차대전은 끝이 났다. 그후 다행스레 핵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일어날 수가 없었다. 1960년 나는 미국 유학 중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 라이너스 폴링 박사의 강연을 들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강대국들이 만들어서 땅과 바다에 배치해 놓은 핵무기는 지구 같은 별 16개를 일시에 불바다로 만들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는 농담처럼 그러나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한 백만장자 친구가 핵전쟁이 꼭 일어난다고 걱정을 하더란다. 폴링 교수는 돈내기를 청했다. 핵전쟁이 나면 백만 달러를 내겠고 아니라면 그 액수를 받겠다 했다. 그의 논리는 간단하다. 전쟁이 나면 다 죽을 테니까 걸어 놓은 돈을 받을 자도 낼 자도 없다.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면 자기가 백만 달러를 벌게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고 한다.
1980년대 초반 내가 뉴욕 유엔본부에서 근무할 당시였다. 핵무기와 화학무기를 합하면 전세계 인구의 300배를 살해할 수 있는 무기를 미국은 가지고 있었다. 소련도 비슷했고 핵보유국들을 다 합하면 인류만 아니고 생태계를 전멸시킬 수 있다는 보고를 들었다. 오늘 지구촌 뜰 앞과 바다 속에는 적어도 2만기 내외의 핵탄두가 도사리고 앉았다.
이 소름이 끼치는 8월 핵무기를 많이 생각하게 되는 때에 동아일보와 아사히신문이 핵무기에 관한 한'일'중'미'독'불 여섯 나라의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너무도 참담한 통계숫자를 읽는 손과 가슴이 마구 떨렸다.
'핵무기를 가지면 다른 나라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다'는 주장에 62%가 동의했고 '핵무기를 가지면 국제사회에서 더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는 데도 63%가 그렇다고 대답했다는 조사 결과를 믿고 싶지 않았다. 약육강식의 군국시대는 다시 와서는 안된다. 핵무기에 의지하는 나라와 백성은 인류의 내일을 영도해 나갈 자격이 없다.
더더욱 내 마음을 갈갈이 찢는 대목이 있었다. 30, 40대의 이 나라 장년층 대들보들이 핵무기 보유를 찬동하고(30대-58.5%, 40대-57.7%) 10명 중 4명이 '북한도 핵 가질 수 있다'고 주저없이 답을 했다고 한다. 한겨레는 강대국 대열에 서기보다는 평화를 사랑하는 약소국들과 손을 잡고 나가야 살 수 있다. 대안이 없다. 강대국들이 우리를 보고 총포를 내려 놓게 되어야 한다.
'핵무기는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 전쟁의 무기가 아니고 너도 나도 같이 공멸하는 문제만 제기했다'고 미국의 해군제독 죤 마셜 리(John Marshall Lee)는 경고했다. 한반도 금수강산이 핵전쟁의 무대로 전락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 남북의 정치가들은 정말 뼈아픈 생각을 해야 한다. 정치 때문에 백성을 핵무기의 희생물로 삼게 되지는 않아야 한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이 위험한 시대에 조국과 민족을 살린다. 핵전쟁은 없다. 한번 일어나면 우리도, 아시아도, 인류도, 생태계도 모두 소멸한다는 간단한 진실에 눈을 가리고 있지는 않은지 골똘히 사색해야 한다.
이윤구 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 이사장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