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용훈 대법원장 지명자는 철저한 원칙론자

'야박할 정도의 원칙론자. 쓴소리라도 할 말은꼭 하는 사람. 현실에 안주하기를 싫어하는 개혁성향 법조인' 18일 후임 대법원장으로 지명된 이용훈(李容勳.62) 변호사는 법원 안팎에서 '개혁성향 법조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실상은 '진보적 법관'보다는 원칙에 맞지않는 폐단은 뜯어고쳐야 속이 풀리는, '철저한 원칙론자'에 가깝다.

고시 합격 후 대전지법을 시작으로 서울민사·형사지법과 서울고법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사법연수원 교수를 역임한 그는 서울민사지법 부장판사, 서울고법부장판사에 이어 법원행정처 차장, 대법관, 중앙선관위원장 등을 거친 인물.

하지만 권위주의 정권 시절 권력의 눈 밖에 나는 바람에 시국사건은 물론, 형사재판장을 맡지 못하는 등 인사상 불이익을 겪었다. 유신초기인 1972년 의정부지원 판사로 재직중 시국사건 피고인에게 징역 2년 이상을 주문한 외부 압력에도 징역 6개월을 선고했으며 5공 시절에도 깐깐한 소신을굽히지 않은 탓이었다.

그가 서울고법 재판장일 때 배석판사였던 후배 법조인은 "재판장들이 변호사들에게 술을 얻어먹곤 하던 때에도 한번도 그런 일을 하는 걸 보지 못했다"며 "판결문의 수치계산이 틀리면 꼼꼼하게 짚어내고 혼내셔서 쩔쩔매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이 법조인은 "법률해석 문제 등이 복잡할 때면 당시 이회창 대법관 등 선배 법관들에게 의견을 구하기를 꺼리지 않았다"며 "하급심에서 봐주기식 판결이 올라오면여지없이 깨버린 사람이 바로 이용훈 지명자"라고 말했다.

후배 법관들에게 워낙 깐깐하게 재판지도를 하는 바람에 '벙커'(배석판사들이함께 일하기를 부담스러워 하는 재판장을 일컫는 법원내 은어)라는 별명이 붙기도했다.

한 후배 법조인은 "독실한 기독교인이라 그런지 술도 일절 하지 않으셨고 지금도 연립주택에서 사실만큼 검소한 생활을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이유들 때문에 최종영 대법원장이 임명되던 1999년에도 그는 유력한 대법원장 후보로 거론됐고 2000년 대법관을 그만 둔 뒤에도 개혁적 인사가 필요한 법관인사제도개선위원장, 대법관제청 자문위원장, 공직자윤리위원장 등을 맡았다.

판사로서는 특별히 '사회적 약자 보호' 원칙을 세우지는 않았지만 항상 '원칙론적인 판결'을 고수한다는 평가를 얻었고 대법관 시절에는 소수의견을 내는 일이 많았다.

공무원이 받은 돈에 특별한 대가성이 없더라도 직무와 관련된 것으로 의심될만한 돈이라면 뇌물로 봐야 한다는 판례나 성폭행의 사전모의가 없었더라도 암묵적 협조가 있었다면 특수강간죄에 해당한다는 판례 등을 남겼고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됐다 항소심에서 '선처'된 사건들도 가차없이 파기해 내려보냈다.

삼청교육대 피해자들의 배상 소멸시효가 이미 끝났다는 전원합의체 판결에선 시효가 끝나지 않았다는 소수의견을 냈고 파업기간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세운 대법원판결 때도 노동자에게 기본생계비마저 주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며 반대의견을 냈다.

12.12 및 5.18 사건 재판 때는 다른 대법관 12명이 "전두환, 노태우 등의 혐의중 불법진퇴 지휘관수소이탈죄가 반란죄에 포함되므로 따로 처벌할 수 없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 지명자 혼자 "그것만으로도 중한 범죄이므로 별도로 처벌해야 한다"는의견을 냈다.

반면 지난해 4월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 대통령측 변호인으로 활동하고 같은해 10월 정부 공직자윤리위원장이 된 전력 때문에 참여정부가 '코드'가 맞는 법조인을 고른 게 아니겠느냐는 관측도 있다. 김종빈 검찰총장(여수)과 천정배 법무장관(신안)에 이어 대법원장(보성) 자리에호남출신이 오른 점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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