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부부 강간죄

지난 2003년, 결혼생활 12년 동안 가정 폭력과 성적 학대에 고통 받던 서울의 30대 주부 신모씨가 남편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남편의 폭력을 견디다 못한 신씨가 이혼 소송을 내자 남편은 이혼 소송 취하를 요구했다. 아내는 거부했다. 그러자 남편이 흉기로 아내를 위협, 강제로 성관계를 가지려 했고 격분한 신씨가 그만 흉기로 남편을 살해했던 것.

◇ 신씨 사건 후 한국여성개발원은 공청회를 열었고 '부부 강간' 문제는 사회적 이슈로 급부상했다. 찬반 양론이 팽팽히 맞섰다. 찬성파는 "부부간이라도 폭력을 수반한 강제적 성관계는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며 부부의 대등한 지위권과 헌법상 평등권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원치 않는 임신도 그러려니와 이혼 수속 중이거나 별거 중인 부부 사이의 성폭력 증가 또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음도 지적했다. 반대파는 "결혼은 합의한 성적 관계를 전제로 한다"며 "부부간 잠자리도 법으로 따져야 하느냐"고 맞섰다.

◇ 국회가 입법 추진 중인 부부 강간죄가 대한변호사협회의 반대 입장 표명으로 또다시 논란이 예상된다. "은밀한 부부 관계에서 폭행 수반 여부를 입증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과 "일반 강간죄(3년 이상 징역)보다 훨씬 높은 무기 또는 징역 7년 이상의 형량" 등을 문제점으로 들고 있다. 다만 변협은 꼭 입법을 해야 할 경우 3년 이상 징역 등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 반면 여성 변호사들은 이와 뜻을 달리하고 있어 법조계 여론도 엇갈리고 있다. 여성 변호사들은 "부부 강간죄는 용서가 가능한 단순 폭력이 아니라 방치할 경우 자녀들에까지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심각하고 상습적인 폭력에 대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 우리 사회에서는 기혼 여성의 36% 정도가 남편에 의해 강제적 성폭행을 당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단순 강압, 구타 동반, 가학적 강간 등의 유형이며, 피해 여성 대부분은 불안'공포'우울증'남성 혐오'자살 충동 등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 이미 지난해 법원은 남편의 강제적 성폭행을 아내가 고발한 사건에 대해 남편에게 형법상 강제추행 치상죄를 인정, 아내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미국'영국'독일 등의 선진국가에서도 법적으로 부부 강간을 인정하는 추세다. 어쨌든 공은 국회에 있다. 이럴 때 솔로몬의 지혜는 어떤 것일까.

전경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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