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직장인의 점심시간 '사막의 오아시스?'

샐러리맨들에게 점심시간은 사막을 헤매다 만나는 오아시스나 다름없다. 외근을 주로 하는 직장인들에겐 점심시간의 소중함이 다소 덜하겠지만 꽉 짜여진 시간에 잠시도 책상 앞을 떠날 수 없는 '체어 맨'(?)들에겐 그나마 기지개도 켜고 산보도 할 수 있는 금쪽 같은 시간. 길어야 한 시간 남짓한 점심시간, 밥 먹기를 끝낸 직장인들의 모습을 들여다봤다.

점심시간에 찾아간 대구 동구 효목동 KTF빌딩. 이동통신업체인 KTF 대구마케팅본부가 자리잡은 이 건물에는 500명가량의 직원이 상주한다. 대부분 직원들은 10층에 위치한 구내식당을 이용한다. 점심값도 3천 원으로 비교적 싸고 인근에 식당가도 별로 없기 때문. 식사를 제공하는 시간은 오전 11시30분부터 2시간 정도지만 직원 개개인의 점심시간은 한 시간 정도. 배식부터 식기를 반납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15분여. 나머지 45분 동안 무엇을 할까?

이 건물 지하 1층에는 헬스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시설비만 1억여 원이 들었다는 헬스장은 썰렁함 그 자체. 사업지원팀 박정춘 대리는 "사실 점심시간을 쪼개 운동하기에는 옷을 갈아입고 샤워도 해야 하는 등 불편한 점이 많다"며 "오히려 출퇴근 전후에 헬스장을 이용하는 직원들이 많다"고 했다. 대신 동료들끼리 보드게임을 하거나 1층 로비의 커피숍에서 차 한잔 나누는 편이 낫다는 것. 인터넷 마니아들은 점심시간에만 허용된 싸이월드 접속에 목숨(?)을 건다.

하루 종일 앉아있는 사람과 어쩔 수 없이 서서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 보내는 점심시간은 천양지차다.

소방시설 관련업체인 (주)위니텍 신재홍(31) 과장은 가급적 밖에서 점심을 해결하는 편. "계속 앉아있다보니 밥 먹으러 가는 동안만이라도 걷고 싶어서 밖으로 나갑니다. 돌아오면 20분 정도밖에 시간이 남지 않아 다른 일을 못합니다. 대신 커피 한잔 하며 인터넷 카페에 접속해 글을 남기는 정도가 전부죠."

반면 하루 종일 서 있어야 하는 백화점 판매사원들에게 점심시간은 그나마 피곤한 다리를 쉴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롯데백화점 화장품코너의 남영애(32·여)씨는 "영업시간 중에는 계속 서 있을 수밖에 없어 밥을 서둘러 먹고 휴게실 등에 앉아 부어오른 다리를 마시지하거나 재충전하는 시간을 갖는다"고 했다. 점심시간은 40~50분 남짓.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남은 20분여 동안 인터넷을 하거나 책을 읽으며 쉬기도 한다.

하지만 짧은 시간을 쪼개고 쪼개 활용하는 알뜰족들도 있다. 대구 동구청 지적과 정광식(48)씨는 4년째 점심시간을 이용, 중국어를 배우고 있다. 외부강사를 초빙, 일주일에 3번 강의를 듣는다. 강의가 있는 날이면 지하 구내식당에서 얼른 점심 한 끼를 때우고 보건소 지하 외국어 교육장으로 걸음을 옮기기가 바쁘다.

증권회사에 근무하는 유상석(44)씨는 아예 점심시간을 잊고 사는 경우. 대부분 증권맨들처럼 오전장이 끝나는 낮 12시쯤 교대자에게 잠시 자리를 맡기고 후딱 점심을 해치우고 장으로 돌아와야 한다. 특히 요즘처럼 활황인 때는 식사때 온 신경이 주식 현황판에 쏠려 있다. 식사를 시켜먹거나 도시락으로 때우는 직원들도 많은 편이다.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기 위해 점심을 도시락으로 해결하는 직장인들도 많다. (주)위니텍 변헌주(27·여)씨는 사 먹는 밥이 영양가가 있을 리 없다며 지난 2003년 12월 입사한 뒤 줄곧 도시락을 고집한다. "도시락을 싸 오려면 아무래도 귀찮기 때문에 도시락팀 멤버들이 들락날락합니다. 평균 5명 정도가 함께 식사를 하는데, 메뉴를 정하고 또 식당까지 가느라 허비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어서 좋아요." 남은 시간엔 건물 밖으로 산책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주로 웹서핑에 할애한다. 여사원들의 '즐겨찾기'는 인터넷 쇼핑몰. 실제 구매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백화점까지 갈 시간이 안 되다보니 모니터상에서 '아이쇼핑'을 즐긴다고. 밥 먹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는 것은 직장인들의 공통된 목표. (주)태평양 조지현(29) 교육담당자는 "조금 일찍 식사를 하러 가거나 아예 늦게 가는 것도 줄서서 보내는 시간을 아끼는 한 방법"이라며 "남은 시간엔 영어회화를 공부하거나 교양서적을 몇 쪽이라도 읽는 편"이라고 했다. 김수용기자 ks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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