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바우에 할머니 회상(回想)

2002 월드컵에서 기적의 드라마를 연출하여 국민적 영웅이 되었던 히딩크 감독 덕분에 우리와 아주 가깝게 느껴지는 북유럽의 작은 나라, 네덜란드는 나에게도 아주 특별한 나라이다.

1990년부터 고(古)음악 연구를 위해 방학을 이용해 오가던 네덜란드에서 만난 얀 라스(Jan Raas)선생님. 그분과 함께 좀 더 공부하기 위해 뒤늦은 유학을 결심한 건 그로부터 6년이나 지난 후였고 그때 나는 아이가 둘이나 딸린, 유학생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학교는 네덜란드의 중부도시 유트레히트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나는 50분이나 기차를 타고 다녀야하는 할렘의 바우에 할머니 집에 하숙을 하게 되었다.

그 분은 그때 이미 일흔에 가까운 연세였는데 영어, 불어, 독일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음악을 특히 좋아하셨다.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셨는데 자식들이 다 자라 독립한 후부터 할렘에서 격년제로 열리는 국제오르간아카데미에 참가하는 음악인들을 홈스테이 한 것이 계기가 되어 하숙을 쳐서 생계를 해결하는 그런 소시민의 삶이었다.

일주일에 두 번씩은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으며 합창연습을 다니셨는데 어느 날 합창 악보를 보니 베토벤, 브루크너의 곡이었다. 어렵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전혀 어렵지 않다며 즐겁게 노래를 흥얼거리셨다.

음악회가 있는 날이면 할머니는 몇 주 전부터 분주해지신다. 미리 티켓을 여러 장 사서 친구들에게 일일이 전화해 함께 갈 사람들을 모으신다. 그리고 음악회가 끝난 콘서트헤보우 버스정류장은 할머니들의 스스럼없는 비평으로 그 날 음악회의 성패가 대충 가늠된다. 가끔 노상(路上)에서의 그 비평들은 혹독하기까지 하지만 오케스트라 음량의 균형에서부터 무대 배치까지, 어떤 때는 너무나 정확하고 예리한 분석이어서 그 후 할머니를 내 연주회에 초대하는 것이 부담이 될 정도였다.

기본적인 생활을 겨우 유지하면서도 그녀가 누리는 미적(美的) 차원은 너무도 놀라운 것이어서 나는 그 문화적 차이에 한 번씩은 주눅이 들곤 했다.

할머니를 못 뵌 지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전화를 하면 그 특유의 고음으로 어제 만났던 사람처럼 친근하게 반겨주실 것 같다. 단순한 삶을 즐기면서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길동무 하나 그리운 요즈음이다.

이 상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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