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박세리한테 져 본 적 없어요"
지난 2001년 미국여자프골프(LPGA) 투어에 뒤늦게 진출하기 전까지 강수연(29.삼성전자)이 자주 하던 말이다.
98년 LPGA 투어에 진출해 최정상급 스타로 군림하던 '천하의 박세리'를 발 아래로 볼만큼 강수연은 '1인자'라는 자존심이 강한 선수였다.
그도 그럴 것이 강수연은 국가대표를 거쳐 한국여자프로골프에서 3년 연속 최저타수 1위를 차지하며 상금왕까지 오르는 등 최고 선수였기 때문.
한국 무대 통산 8승에 구옥희(49), 박세리와 함께 단일대회 3연패라는 기록도 갖고 있고 2000년 아시아서키트 3승을 달성하는 등 해외 무대에서도 녹록지 않은 실력을 뽐냈던 강수연이다.
더구나 강수연의 한국여자오픈 2연패는 아니카 소렌스탐(스웨덴), 박세리, 로라 데이비스(잉글랜드) 등 내로라하는 LPGA 스타플레이어들이 참가한 가운데 이뤄낸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강수연이지만 2001년 첫 발을 디딘 미국무대에서는 '무명'이나 다름없는 세월을 보내야 했다.
2000년 퀄리파잉스쿨에서 공동49위에 그쳐 겨우 조건부 출전권을 받아 자존심을 구긴 강수연은 이듬해 3개 대회에 출전해 단 한번 컷을 통과하는 망신을 당했다.
그때 벌어들인 상금이 3천776달러.
눈물을 뿌리며 국내로 복귀한 강수연은 한국여자오픈, 하이트컵, LG레이디카드오픈 등 3승을 쓸어담으며 마음을 추슬렀다.
2002년에도 2승을 올린 강수연은 다시 한번 LPGA 투어에 도전장을 냈다.
퀄리파잉스쿨 7위로 당당히 전경기 출전권을 손에 넣었지만 후배들의 우승 파티에 들러리로 서는 신세는 여전했다.
2003년 다케후지클래식 준우승으로 반짝했지만 상금랭킹 33위에 머물렀던 강수연은 작년에는 '톱10' 3차례 입상에 상금랭킹은 45위로 곤두박질쳤다.
어느덧 본격적인 투어 생활 3년째에 접어든 올해도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이번 우승 전까지 '톱10' 2차례에 상금순위는 42위(21만3천달러).
때늦은 미국 진출로 미국 골프코스에 대한 적응도 쉽지 않은데다 장시간 이동과 호텔 예약과 식사 등 모든 게 익숙지 않았던 것이 강수연에게는 걸림돌이었다.
더구나 몸도 자주 아팠다.
어깨가 아파 경기 도중 기권하는 일도 있었던 강수연에게는 주변에서 "그만 하고 국내에 돌아오라"는 권유도 잇따랐다.
그러나 강수연은 "우승 한번 없이 이대로 돌아갈 수 없다"고 미국 무대를 고집했고 끝내 집념과 오기로 생애 첫 우승을 따내 '한국 최고선수'의 자존심을 곧추 세울 수 있었다.
174㎝의 큰 키에 다소 호리호리한 체격이지만 장타력도 뒤지지 않는 강수연의 장기는 정확한 아이언샷.
미국 무대에서는 빛을 보는데 오랜 세월이 걸렸지만 강수연의 아이언샷은 한국골프장의 작은 그린에서 발군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번 대회에서 그동안 피나게 연습한 퍼팅 실력이 우승의 원동력이 됐다는 강수연은 또 같은 이름의 영화배우 강수연씨에 버금가는 미모와 화려한 의상으로 '필드의 패션모델'이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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