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군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오지의 하나로 꼽힌다. 태백산맥 끝자락에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예로부터 육지의 섬이라고 불려왔다. 자연히 농사지을 땅도 별로 없고 고추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물산도 없어 살아가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살길을 찾아 외지로 나갔다.
서울에 사는 영양 사람들도 이렇게 고향을 떠난 경우가 대부분이다. 농사지을 땅도 없고 돈될 만한 물산도 변변치 못한 고향이다보니 서울로 올라온 사람들의 생활력은 어느 지역보다 강하다. 서울의 영양사람 가운데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양출신 인사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문화·예술 방면에 특출한 인물이 많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시 문학사의 한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청록파'의 한 사람이자 조선조 선비의 전형을 보는 듯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고 조지훈 시인과 시문학 전문지인 '시원(詩苑)'을 창간, 1930년대 우리 문단에 예술지상주의를 도입한 오일도 시인이 바로 영양 출신이다.
이러한 문향(文鄕)의 기운은 오늘에도 이어져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소설가 이문열, 서구 문학사 중심의 주류 이론을 타파하는데 큰 족적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조동일 교수 등을 낳았다.
지난 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공모에서 '새하곡'(塞下曲)으로 등단한 뒤 매일신문 문화부 기자로 재직하기도 했던 이문열씨는 '사람의 아들' '황제를 위하여' '영웅시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통해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현란한 문체와 해박한 지식이 뒷받침된 능란한 이야기 솜씨로 풀어내 폭넓은 대중적 호응과 사랑을 받고 있다. 상업적으로도 성공해 그의 소설을 펴낸 출판사의 총매출 중 절반 정도를 차지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조동일 계명대 석좌교수의 경우 문학을 제대로 공부하려면 프랑스 문학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서울대 불문학과에 진학, 박사과정까지 갔다가 우리 문학으로 방향을 전환한 뒤 각종 저서를 통해 한국문학을 세계 속의 문학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거대 프로젝트'를 가꿔왔다. 그 결실이 바로 전 6권의 방대한 '한국문학통사'이다. 이를 통해 조 교수는 새롭게 문학의 시대를 구분하여 동아시아문학사와 세계문학사를 연결시켜 놓았다는 찬사를 받았다. 그의 이러한 업적은 끊임없이 샘솟는 '공부 욕심'에서 나왔다. 국내 인문학계에서 가장 많은 논문을 쓴 사람이 바로 조 교수라고 한다.
문학에서 빛을 발한 영양 사람이 이들 둘이라면 역사학에서 우뚝솟은 사람이 바로 조동걸 국민대 명예교수이다. 일제 강점하의 독립운동사 연구에 평생을 바쳐온 조 교수는 그 공로로 최근 독립기념관이 광복 60주년을 맞아 제정한 제1회 독립기념관 학술상을 수상했다.
이는 조 교수가 지난해 1월 위암수술 후 1년여의 투병생활 끝에 받은 것이어서 더욱 빛나 보인다. 그는 병석에 눕기 전까지 한일역사공동연구위 한국측 위원장을 맡아 왕성한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이 밖에 문화·예술계 인사로는 지난 74년 고 김동리씨의 추천으로 등단해 KBS TV문학관 '영원한 외출', MBC 베스트셀러극장 '보석 고르기', 영화 '타인의 둥지' 등을 펴낸 소설가 김창동씨와 시인 김설야, 김태현, 황근식씨 등이 있다.
대중문화계에서는 KBS 'TV손자병법', MBC '화려한 휴가' 등에 출연했던 인기 탤런트 오현경씨와 안대용씨 등이 있다.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 '아름다운 휴가' 등에 출연했으며 2001년 청룡영화상 여주조연상을 받은 영화배우 오지혜씨가 오현경씨의 딸이다.
강북삼성병원(전 고려병원) 이사장을 지낸 조운해씨도 영양을 대표하는 인사이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장녀로 그룹 분가 당시 전주제지(현, 한솔제지)를 갖고 독립한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의 남편이다. 한솔텔레콤의 신주 인수권을 헐값에 넘겨받은 뒤 되팔아 1천900억 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구속됐다가 집행유예로 풀려났던 조동만 한솔그룹 부회장이 그의 차남이다. 3남인 조동길씨가 그룹 회장으로 있으나 조운해씨는 경영에 간여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밖에 재계 인사로는 여성 내의 전문업체인 남영그룹의 남상수 회장, 이원기 KB자산운용 대표이사, 김중한 아세아제지 감사, "빠져봅시다"라는 카피로 유명해진 청량음료 컨피던스의 생산업체인 동아오츠카의 조기창 사장, 조훈영 진우약품 회장, 임인순 한국엠파이어 대표이사, 김진시 대정크린 회장, 장용수 롯데호텔 상무, 손근수 농심 상무, 김영수 중소기협중앙회 명예회장, 남성희 전 쌍방울 사장, 정영달 전 에버랜드 부사장 등이 있다.
관계에는 외무고시 13회로 외무부 통상2과장과 지역통상국장을 거쳐 현재 주 제네바대표부 차석대사와 세계무역기구(WTO) 분쟁패널 의장을 겸하고 있는 조태열씨, 영양고와 건국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행시 14회로 관계에 들어간 뒤 재경부 국고국장과 세무대학장을 거쳐 현재 한국자산관리공사 사장으로 있는 김우석씨 등을 제외하면 아직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이 드물다.
전직으로는 남문희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 행시 13회로 대구세관장을 지낸 구창회 관우회 이사장, 행시 12회로 감사원 사무총장을 지낸 황병기 금강고려 사외이사, 행정자치부 출신으로 한국지방재정공제회 상임이사로 재직중인 김공박씨, 김조한 전 대법원 감사관 등이 있다.
정계에는 이재오 한나라당 의원(서울 은평을)이 있다. 중학교 교사 출신으로 20여 년 간의 재야운동을 거쳐 지난 95년 15대 총선에서 제도권으로 들어온 뒤 내리 3선을 했다. 대구 북구에서 2선을 했으나 17대 총선 공천에서 탈락한 뒤 출마를 포기했던 박승국 전 한나라당 의원, 국민회의 총재 특보와 한국마사회장을 역임한 윤영호 전 새천년민주당 경북도지부장도 영양 출신이다.
언론계에도 현직 인사가 별로 없다. 문화일보 문화부장 출신으로 현재 언론중재위 전문위원으로 있는 오정국씨와 오인목 전 연합뉴스 논설위원, 정진 전 문화방송 보도위원 등이 있으며 현직으로는 조기창 KBS 저작권팀장이 있다.
법조계에는 검사 출신의 오희택 법무법인 '광화문' 변호사를 비롯해 박종대, 권재칠, 김영우, 박수춘, 이재숙, 이태현 변호사 등이 있다.
정경훈기자 jgh0316@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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