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지방선거와 지방자치 발전

전국 곳곳에 '풀뿌리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정당 공천제 반대', '중선거구제는 정치적 야합' 등등의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지난 8월 4일 개정'공포된 기초의원 정당 공천제 허용, 중선거구제 및 비례대표제 도입, 기초의원 정수의 축소 등을 골자로 하는 공직 선거법에 대한 기초의원들의 집단적 반발의 표출이다. 현역 기초의원의 입장에서 보면 정당 공천제는 성가신 제도임에 틀림없고, 선거구당 2~4인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는 다른 동 후보자와 경쟁해야 하고 선거 비용도 더 드는데다 의원 정수까지 줄어드는 매우 불리한 제도다. 정당 공천제와 중선거구제에 대한 현역 기초의원들의 이해타산은 그렇다고 치고, 이들이 정당 공천제와 중선거구제에 반대하여 내건 명분은 과연 타당한가?

사실 기초의원 정당 공천제와 중선거구제의 도입은 기초의원들이 비난하듯이 여야 간의 정략적 타협의 결과다. 기초단체장 공천 배제는 예외 없이 여당이 선호하는 안이었다. 한나라당이 여당일 때도 기초단체장 공천 배제를 주장했고, 여당인 열린우리당 역시 이번 선거법 개정에서 기초단체장 정당 공천 배제안을 들고 나왔던 것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반대에 부딪혀 좌절되자, 차선책으로 기초의원까지 정당 공천을 확대하되 중선거구제를 관철시킨 것이다. 중선거구제에 대한 기초의원들의 반대는 상당한 명분이 있다고 생각된다. 기초의원과 광역의원의 선거구가 비슷하여 대표성의 혼선이 발생한다든지 선거 비용 부담이 증가하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중선거구제 도입의 필요성이 정말 있었다면 지역민과의 밀착성이 더욱 강조되어야 할 기초의원 선거는 소선거구제로 하고 오히려 광역의회 선거에 중선거구제를 도입하는 것이 순리라고 할 것이다.

정당 공천제에 대한 기초의원들의 반대 논리 역시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정당 공천제에 반대하는 논거는 공천 과정의 문제, 선거 과정의 문제, 선거 후 지방 정치의 문제 등 크게 3가지로 대별될 수 있다. 지방 정치인을 중앙의 유력자 혹은 지역구 국회의원의 가신 그룹으로 전락시키고, 음성적 공천 헌금 등 온갖 부패의 온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공천 과정의 문제다. 지방 선거가 지역 일꾼을 뽑는 행사가 아니라 정당 간의 사활을 건 각축장이 되어 지역적 이슈가 퇴색되고 선거가 과열되는 것이 정당 공천제의 선거 과정의 문제라면, 정당의 지역 할거 구도에 의해 한 정당이 단체장과 지방의원을 석권하여 지방의회의 단체장에 대한 견제와 감시 기능이 실종되는 것 등이 선거 후 지방 정치의 문제다.

이같이 현 시점에서 정당 공천제는 상당한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이 틀림없지만, 필자는 기초의원에까지 정당 공천제를 확대하되 정당 공천제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지방자치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는 지방 수준의 정당 설립을 허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정당이 기초의원을 공천하는 것은 정당 정치를 지향하는 우리 헌법의 정신과 부합한다. 헌법재판소 역시 2003년 1월 30일에 선고한 2001헌가4 결정에서 "기초의원 선거를 그 외의 지방 선거와 다르게 취급할 본질적 차이점이 없다"며 "구태여 정당의 영향을 배제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곳이 있다면 그것은 기초의회보다는 집행 업무를 담당하는 기초단체장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라고 하여 기초의원만을 정당 공천에서 배제하는 것이 위헌이라는 것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공천 과정의 문제는 정당의 분권화 및 민주화가 미흡한 상황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아직 과도기 상태에 있는 상향식 공천 제도가 제대로 정착되면 많이 완화되리라고 기대할 수 있을 것이며, 기초의원의 정당 공천은 유능한 인재를 정당에 충원하고 정당의 지방 조직을 활성화함으로써 정당의 분권화 및 민주화에 기여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지방 선거에서 지역적 이슈가 부각되게 하고 단체장에 대한 견제와 감시 기능을 강화하여 정당 공천제로 인한 선거 과정 및 선거 후 지방 정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방 정당 설립을 허용하는 것이 절실하다. 기초의원의 정당 공천제에 반대하기보다는 정당 민주화와 지방 정당 설립 허용을 위한 정당법 개정을 촉구하는 것이 지방자치의 발전에 기여하는 길이 아닐까?

정준표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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