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대법원장의 임기만료를 한 달 여 앞두고 대통령이 차기 대법원장 후보를 지명함으로써 대법원장 교체의 의미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새 대법원장 지명자가 새로운 시대적 소명에 들어맞는 '안정속의 개혁'을 이룰 수 있는 인물로 평가, 환영하고 있는 분위기인 것 같다.
그렇지만 국민은 법원의 개혁에 진정으로 목말라 하고 있음을 직시하여야 한다. 정치와 사회 각 분야의 민주화 개혁에 맞추어 법원 내부의 개혁이 상당히 이루어졌고, 현재도 큰 걸음으로 진행 중에 있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지만 아직도 부족함을 느끼는 사람이 다수를 차지하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법원의 개혁이라는 것은 법원 내부 시스템의 개혁과 소송 당사자를 포함한 국민에 대한 사법서비스의 질적 개선이라는 측면으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현재의 법원 내부시스템의 문제점으로서는 무엇보다도 법관인사에 있어서 과거부터 제기되어 온 '발탁인사' 문제를 들 수 있다. 우리의 법관 인사시스템은 아직도 직급과 서열에 따른 피라미드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즉 지방법원 부장판사에서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하는 과정에서는 여러 명의 대상자 중에서 발탁되어야 한다. 이러한 발탁의 기준은 과거 수십 년간의 전통에 따라 여전히 공개되지 않고 있어 그 합리성에 관하여 검증을 받지도 못하고 있다.
이러한 승진인사 시스템의 문제점은 여러 차례 지적되었고 그 보완대책으로 '순환보직제'가 채택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아직 본격적으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 과거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은 위와 같은 발탁승진을 통하여 탈락법관의 자진사퇴를 유도해 법관인사의 숨통을 트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이런 인사 적체 해소를 위해서라면 법관 재임용심사에서의 합리적 기준과 절차를 통하여 부적격 법관을 재임용 탈락시키는 방법을 통하여 해결함이 옳다고 본다. 법관인사를 위한 심사평점은 변호사, 상급심법원의 법관, 법원장 및 부장판사 등에 의한 다면평가를 통하여 정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고등법원 부장판사 이상의 고위직 법관의 특정대학 편중현상은 인위적 방법에 의해서라도 반드시 시정되어야 한다.
법관인사 시스템의 개혁의 하나인 '법조일원화 정책'은 더욱 가속화해 이른 시일 내에 정착시켜야 할 것이다. 일정한 경력을 거쳐 능력과 자질이 검증된 변호사를 법관으로 임용하는 것과 더불어 법원사무관이나 사법보좌관의 임용대상을 변호사 또는 사법연수원 수료자로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직원들도 재판업무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므로 그 자격기준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실시되고 있는 중견법관에 대한 '연구법관 제도'의 보완이 있어야 한다. 대상법관을 국내의 법과대학에 파견해 젊은 교수들과 공동연구를 실시하거나 학문적 토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사법서비스의 질적 개선 문제는 일반국민의 법원에의 '접근권'을 새롭게 인식하고 강화시키는 데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법원업무의 성격상 일반인들이 이해하고 적응하기가 어려운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법원 직원은 최대한의 친절과 인내로 민원인에게 다가서야 한다. 소송당사자나 민원인은 정당한 대금을 지급한 서비스 구매자라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도록 하여야 한다.
법원의 판결절차에 소송당사자의 참여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한다는 취지에서 집중심리제를 실시하고 있으나 법관들의 업무과중으로 인해 본래의 모습을 잃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살펴보아야 한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분쟁의 내용도 과거의 모습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난해해졌다는 점을 인식하고 법관의 업무분담에 있어서도 배려가 있어야 한다.
대법원장에 대해 국민이 바라는 가장 큰 소망은 법관이 법과 양심에 따라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껏 재판할 수 있도록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 약자들이 마지막으로 의지할 곳은 법원뿐이라는 인식을 확실하게 심어 주도록 하는 것이다. 특히 특정 시민사회단체에 의한 조작된 여론으로부터의 독립성 확보에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어야 한다. 조급한 사회개혁론자들은 법관이 지키고자 하는 실정법의 정당성 자체에 대해 끊임없이 공격하면서 실정법질서에 따른 재판의 존엄성을 훼손하려 할지도 모른다. 새 대법원장은 이러한 공격으로부터 사법부의 정당한 권위를 지켜나가고 법관을 비롯한 모든 법원구성원과 법조계 및 법학계의 긍지를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권혁재 경북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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