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100여 일을 앞두고 최근 여기저기 특강을 다녔다. 1점이라도 더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모든 것을 기꺼이 바치겠다는 부모의 마음은 한결같았다. 질의응답 시간에 왜 이런 곳에 오느냐고 물어보았다. 집에 가만히 있으면 불안하기 때문이라는 답이 많았다. 취미활동이나 운동을 해 보라고 했다. 공부하는 아이와 열심히 일하는 남편에게 미안해서 그렇게는 못한다고 어느 어머니가 말했다. 그렇다면 오전은 학교 앞에 가서 아이를 생각하고, 오후에는 남편 직장 앞에 가서 남편을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면 마음이 편하지 않겠느냐고 농담을 했다. 그 어머니는 실제로 학교 앞에서 기도를 하며 서성거려 본 적이 많다고 했다.
마흔이 넘은 시골 출신의 남자들은 어린 시절 동네 악동들끼리 장난삼아 남의 과일을 따먹는 서리를 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함께 모의를 하고 실행하려는 순간 한 친구가 가담을 거부하면 나머지는 그 녀석을 설득하거나 협박하여 같이 행동하든지, 아니면 같이 포기했다. 모두가 '같이' 가담한다는 공범의식이 서로를 신뢰하게 하고 마음 편하게 했다. 그 의리와 공범의식은 훗날까지 가슴 훈훈한 유년의 추억으로 남아 있다.
수능 시험일이 다가올수록 교실은 더욱 소란스러워진다. 공부할 양은 많은데 시간은 없다는 생각에 모두가 초조하고 불안하기 때문이다. 고통이나 힘겨움이 감당할 수 없을 때는 도피하거나 잊고 싶다. 잠을 자거나 친구끼리 같이 떠들면 일시적으로 공부의 부담을 잊을 수 있다. 망해도 같이 망한다는 생각과 동병상련의 진한 동지애가 마음의 위안을 주는 것이다. 학생들은 지금의 시점에서 가장 현명한 행동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앞으로 점점 심해질 소란한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는 학생은 거의 예외 없이 입시에서 성공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남은 석 달 동안 마음만 차분히 가라앉히면 지난 3년간 배운 내용을 두세 차례 정리하고도 시간이 남을 것이다.
어머니는 자녀의 고통과 불안을 언제나 함께하고 싶어 한다. 민감한 어머니는 관심과 사랑이 지나쳐서 아이보다 먼저 불안해 하고 아이보다 먼저 지친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아이가 불안해하고 조급한 마음을 가질수록 부모는 괜찮다고 말하며 어깨를 툭 쳐주는 여유를 보여 주어야 한다. 이런 생산적인 격려를 잘 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밑도 끝도 없이 아이를 따라 다니기 보다는 차라리 책을 읽거나 등산을 하며 즐겁고 건강한 생활을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자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같이 힘들어하고 아파하며 매사에 개입하고 간섭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인지를 알아야 한다. 자녀는 엄마가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모습을 볼 때 엄마를 인정하고 존경하게 된다. 엄마가 자녀와 함께 불안해하는 것은 교실에서 같이 떠들고 노는 행위와 다를 바 없는 비생산적인 '같이'이다.
헬싱키에서 열린 세계 육상선수권 대회 남자 5천m 결승전을 보았다. 100m 정도 남은 지점에서 선수들은 마지막 스퍼트를 했다. 최종 순위는 그 최후의 순간에 결정되었다. 트랙 경기는 자기 자신과 시간을 두고 벌이는 고독한 싸움이기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더없는 긴장과 숨 막히는 스릴을 느끼게 한다. 공부는 트랙 경기를 닮아 있다. 좋은 기록을 위해 자신과 고독한 투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응원은 멀리 관중석에서 해야 한다. 입시공부는 자녀와 부모가 일정 거리를 나누어서 뛰는 계주가 아니다. 건강한 청년과 손을 같이 묶고 뛰는 시각 장애인의 200m 경기도 아니다. 입시공부는 개인 기록경기처럼 '같이'보다는 '따로'를 당연시하고 중시할 때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사실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윤일현(송원학원진학지도실장, ihny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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