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평양 공연을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온 조용필 은 벅찬 감동의 순간을 잊지 못했다. 23일 평양 유경 정주영 체육관에서 7천 명의 평양 시민 앞에서 20여 곡을 열창 했던 조용필은 "감동적이었다. 내가 생각한 감정선과 딱 맞아떨어졌다"고 흡족해 했 다. 물론 공연이 끝나면 늘 그러하듯 "더 잘 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고도 했다.
무대에서 막 내려온 조용필과 인터뷰를 했다.
다음은 조용필과의 일문일답.
--객석의 반응이 예상했던대로 였나.
▲처음부터 평양 시민이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 않을 것이다 는 생각을 담아뒀다. 안 그러면 내가 당황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걸 염두에 두고 처음 세 곡을 골랐다. 그 다음부터 풀자고. 그런데 어느 순간 무대를 보니까 우는 관객이 눈에 들어왔다. '이젠 됐구나' 싶었다.
--관객들이 울고 있는 것이 보인 시점이 언제쯤이었나.
▲'봉선화'와 '한오백년'을 부를 때부터였다. 감동이 전해져왔다. SBS방송팀이 그 장면을 화면에 잡았다는 말을 들었다. 아무래도 감상적인 곡에 반응이 있는게 여 기의 정서였다.
--남한에서의 공연과 다른 점은.
▲레퍼토리 자체를 평양 공연에 맞게 선곡했다. 객석의 감정을 한마음으로 만들 어야 하는 게 가장 중요해 이곳 특성에 맞는 곡 선택에 신경썼다. 그게 딱 맞아떨어 진 것 같다.
--빠른 곡을 부를 때 객석의 느낌은.
▲관객의 반응은 결국 관객이 만드는 것이다. 처음엔 이런 공연이 흔치 않기 때 문에 서로 옆 사람을 의식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점점 공연이 진행되면서 그들의 시선을 보니 몰입이 돼서 마지막까지 하나로 가는 것 같았다.
--음향이나 조명 등 무대는 만족스러웠나.
▲공연할 때 전혀 문제가 없었다. 다만 체육관을 다목적으로 만들었으면 공연이 좀 유리했을 텐데 공연장으로서는 굉장히 힘들었다. 더욱이 리허설이 부족해 걱정됐 다. 어젯밤 11시까지 밖에 연습을 못한 데다 오늘도 오후 4시까지 연습을 끝내야 해 어려움은 있었지만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온 우리 팀이니까 가능했다.
--마지막곡으로 '홀로 아리랑'을 불렀는데 이유는.
▲무대에 오르기까지 힘들었던 것 중 하나가 북측 관계자들의 요청이 계속 들어 왔던 점이다.(웃음) '홀로 아리랑'을 사실 처음 불러봤다. 북측에서 악보를 준비해 왔는데 '도'는 1, '레'는 2, 이런 식으로 적혀 있어 애를 먹었다.
--공연 마지막에 '음악으로 남과 북은 하나다'라고 말했는데.
▲음악은 정서다. 같은 말을 쓰는 민족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장르가 틀려도 서로 감동을 느낀다는 것을 알았다.
--기립박수 받았을 때 느낌은.
▲그건 말로 설명 못한다.
--무대가 끝나자 어떤 생각이 들었나.
▲아쉬움이다. 어느 공연이든 늘 아쉬움이 남는다. 아마 죽을 때까지 '좀 더 잘 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있을 것이다.
--야외 공연 등 다시 한번 북측 제의가 온다면.
▲야외공연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무대 세팅 등 우리 요구가 모두 수용돼야한다. 좀 더 관계가 좋아지면 그때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한편 조용필과 함께 무대에 섰던 '위대한 탄생'의 리더 최희선씨는 "12년 동안 용필형과 공연하면서 무대에서 딱 두 번 울었다. 한번은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고 한번은 오늘이다. 오늘 북측 사람들 눈물 흘리는 것을 보니 가슴이 벅차다"고 소감 을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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