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이 시대의 주요 코드로 자리 잡고 있다. 한 집 건너 음식점이며 날마다 온갖 요리가 뜨고 진다. 언론마다 맛 집 열전이 대인기다. 이런 '맛 열풍'의 한가운데에 20, 30대가 서 있다.
이제는 부모의 손맛을 직접 잇고 있다. 맛을 위해서라면 '젊음의 향유'는 기꺼이 반납하겠다는 젊은이가 늘고 있다.
복요리전문점인 '해금강' 2호점의 김지영(30·여) 실장은 어머니로부터 9년째 손맛을 배우고 있다. 김씨는 어릴 때부터 '대장금'을 꿈꿨다고 한다. 그래서 대학도 식품영양학을 전공했다. 자격증은 한식, 양식, 복요리, 칵테일, 영양사 등 5개나 땄다. 졸업 후 괜찮은 직장에서 일할 기회가 많았지만 곧바로 본점(지하철 큰고개역 앞)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김씨는 4년 전 북구 오봉오거리 인근의 2호점 개점을 도맡았다. 어머니의 25년 손맛에다 자신만의 경영방식을 접목해 2호점을 고객 발길이 잦은 곳으로 키워냈다.
"식당 주인이 카운터만 보던 시절은 지났습니다. 요리를 직접 할 줄 알아야 하고, 주먹구구식이 아닌 전문적인 경영노하우가 필요합니다."
김씨는 올 초 결혼했다. 동갑내기 남편 류영환씨와 맛 코드가 같다. 류씨는 요리사 출신이다. 류씨는 지난달 지역 대학에서 김씨와 함께 6개월 과정의 외식산업 최고 경영자 과정을 밟았고, 현재 1호점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
어머니와 함께 원대오거리 외환은행 맞은편에서 '창미 고깃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채원(26·여)씨는 똑 소리 나는 여성이다. 역시 3년 전 대학 졸업과 함께 가업을 잇고 있다.
"3년 전 식당 확장 이전을 놓고 가족회의가 열렸을 때 식당 운영에 나서기로 당당히 선언했죠."
김씨는 지난 3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다. 친구보다는 식당과 사귀었다. 어머니는 주방 일을 도맡았고, 김씨는 고객 관리와 영업을 책임졌다. 고객들의 신상을 줄줄 꿰었고, 직원들의 친절에도 신경 썼다. 1주일에 한 번씩 직원과 미팅을 가졌고, 전문기관에 서비스 교육도 시켰다.
어린 나이에 힘들 때가 너무 많아 울기도 많이 울었다는 김씨는 식당을 인근 공단에서 소문난 집으로 바꿔놨다. 김씨는 식당 운영에 노하우가 생겼고, 지금은 요리를 배우고 있다.
"장사가 안 된다고 간판을 계속 바꾸는 식당보다는 어머니의 손맛을 간직한 역사가 깊은 식당으로 키울 겁니다."
또 동성로 대구백화점 인근 '청주버섯'의 정원우(23)씨는 올 초 서울의 명문대 경영학과 4학년에 다니다 휴학한 뒤 부모로부터 '26년 한 우물 경영'을 배우고 있다.
"대개의 부모들은 생고생이라며 자녀에게 식당을 물려주기를 꺼려 하지만 저의 부모님은 외식산업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업종이라며 적극 추천하셨죠."
정씨는 현재 청소와 홀 서비스를 배우고 있다. '식당 운영은 밑바닥부터', '고객을 알아라'라는 부모의 엄명 때문.
"2년 정도 주방 일과 식당 운영 노하우를 배운 뒤 졸업 후 가게를 직접 운영할 계획입니다."
이들은 지난 5월 대구·경북 외식 2세 모임을 만들었다. 회원도 20여 명으로 늘었다. 매달 한두 차례 만나 식당 운영 정보를 주고받고 있다.
이들은 맛에 푹 빠져 있다. 그리고 전국에 간판만 자랑하는 식당보다는 손님들이 끝까지 기억하는 집으로 만든다는 꿈을 꾸고 있다.
기획탐사팀 이종규·이상준 기자
사진: 맛 2세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류영환, 정원우, 김채원, 석재철(동촌유원지 내 석산복어)씨. 이들은 부모들의 손맛을 이어가고 있다. 정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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