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도전! Travel라이프] 유럽 배낭여행-(28)인도 델리/길에서 만난 사람들

시가지 곳곳 까만 소·흰 소·얼룩 소…

흔히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가끔 그 말이 틀릴 때가 있다.

"어머니, 이거 받으세요." 열심히 배낭을 싸고 있는 나에게 아들 혁준이가 꼬깃꼬깃한 지폐 3만7천 원을 내민다. "무슨 돈이야?" "여행경비예요. 여행 가서 쓰시라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뭉클해졌다. 빤히 보고 있던 아이의 눈망울도 흐릿해진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다 안다. 아이를 두고 그것도 한 달씩이나 여행을 계획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또 얼마나 독한 마음을 먹어야 하는 것인지도.

"준아, 네 지갑엔 얼마 있는데"라고 묻자 "0원요"라며 대답하는 혁준이. "그럼 너 아이스크림 사먹고 싶을 때나 준비물 살 때는 뭐로 살래"라는 질문에 질끔 만원을 도로 집어넣는다. 한 달에 만 원씩 주는 용돈을 헤아려보면 그 마음 씀씀이에 가슴이 아려 아무 말 못하고 한참을 안아줬다. 아이 볼에 입을 맞추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떠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던 인도 여행. 매일신문사와 고나우여행사, 그리고 집에 있는 세 남자의 응원에 힘입어 이뤄졌다. 유럽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이 눈으로 즐기는 여행지라면 인도는 마음의 창을 열고 가슴으로 보는 여행이다. 어떤 여행이 내 앞에 펼쳐질까? 어떤 인연을 만날 수 있을 것인가? 수많은 기대와 설렘으로 비행기 안에서의 새벽잠을 설쳤다.

갑자기 "아이요~아이요~(힌두음악이 내겐 이렇게 들린다)"라는 소리가 들렸다. 새벽 3시30분. 눈을 붙인 지 20분밖에 안 되는데 벌써 인도 델리다. 공항에서 나오는 길에 '인크레더블 인디아'라고 쓰인 글귀를 봤다. 경이로운 건 인도가 아니라 바로 인도 사람들이다. 이 새벽에 저렇게 시끄러울 수 있는 배짱, 가히 대단하지 않은가.

공항을 나서니 나를 반기는 수많은 눈들이 있었다. 까만 소, 흰 소, 얼룩 소, 그리고 릭샤왈라(인력거 형태인 릭샤를 모는 사람)들. 많은 남자들의 눈길을 한몸에 받은 아줌마는 몸둘바 몰라하며 40루피(약 1천 원)에 흥정한 사이클릭샤에 올라탔다. 무척 마른 왈라가 비오듯 땀을 뻘뻘 흘리며 페달을 밟고 가는데 뒤에 편하게 앉아 있는 게 미안한 마음도 든다. 하지만 요리조리 피해가며 속도를 내는 것에 은근히 흥이 난다. 아싸! 그 재미에 걸어다녀도 될 델리 곳곳을 오토릭샤, 사이클릭샤를 바꿔타며 돌아다녔다. 그렇게 델리에서의 첫날이 흘러갔다.

이튿날엔 아예 큰맘 먹고 오토릭샤를 전세 냈다. 흥정도 재미있지만 돌아볼 곳을 정하다 보니 시간이 빠듯해서였다. 첫 행선지는 꾸뜹미나르(승전탑) 유적지. 그곳에서 한무리의 나이 지긋한 아줌마들을 만났다. 사리를 입었는데 보이는 뱃살이 다들 만만찮다. 그 넉넉한 모습에 괜히 말을 붙이고 싶어 "안녕하세요. 한국에서 왔어요. 꾸뜹미나르 배경으로 사진 같이 찍을래요?"하니 다들 너무 좋아한다. 너도나도 같이 찍잔다. 사진 한 장에 친구가 돼 시간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었다. 그녀들은 힌두어로, 나는 영어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으나 끊임없는 수다는 그곳을 나올 때까지 계속됐다. 갈 길이 다르니 헤어져야 하는데 계속 여운이 남는다. 악수를 하고 볼을 쓰다듬고 턱을 어루만진 뒤 마무리로 안아준다.

"아 유 해피?" 숙소 앞에 내려준 릭샤 아저씨가 묻는다. 인도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너무도 많이 들은 질문이다. 행복하냐고? 글쎄. 더운 날씨 탓에, 길가에 널린 배설물 피하다가 소 엉덩이에 부딪힌 탓에 조금은 괴로웠는데. 그래도 내일에 대한 기대감은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노경희(주부)

*후원:고나우여행사(www.gonow.co.kr, 053-428-8000)

사진: 1.델리의 시장은 소와 사람들, 오토바이 등이 뒤섞여 무척 어수선하다. 2.맛있는 간식거리를 만드는 인도 총각들. "마담! 일단 드셔 보시라니까요." 3. 꾸뜹미나르에서 만난 넉넉한 아줌마들과 사진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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