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우 후우 감자를 먹으면서/ 나는 또 책을 읽었다/ 감자를 먹으면서 글을 썼다/ 감자를 먹고 학교 선생이 되어서는/ 감자 먹고 살아가는 산골 아이들을 가르쳤다/…/ 감자 먹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마을에 가서 오두막집 지어 사는 꿈을 꾼다.'
아동문학가 이오덕(1925~2003) 선생의 미발표 유고시집 '무너미마을 느티나무 아래서'(한길사)가 출간됐다. 선생의 두 번째 기일인 25일을 맞아 출간된 이번 시집은 생전에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숨겨 놓았던 시창작 노트에서 가려뽑은 56편으로 엮었다.
미발표 유고시는 지난해 시전문지 '시경'에 12편이 처음 공개됐고, 올 상반기에도 57편이 '고든박골 가는 길'이라는 시집으로 출간된 적이 있다. '무너미마을'은 선생이 농사 짓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던 충주 신니면의 시골마을이다.
이번 시집은 선생의 삶과 문학의 지향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소박하고 간소한 생활의 자세, 인간과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 우리의 말과 글을 아끼는 정성, 아이와 같은 순진함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또한 시구마다 꾸밈없는 생활에서 나오는 진실함이 묻어난다. 억지로 짜내고 정해진 틀에 구겨 넣은 듯한 부자연스러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느낀 대로 본 대로 생각한 대로 쓰고 싶은 것을 쓰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시들이 늘 푸릇한 생명의 날개를 달고 있다. 그대로 읽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노래가 되고 교훈이 되고 문명을 비판하는 칼이 되기 때문이다. 몇 편의 시에는 2003년 5, 6월의 날짜가 적혀 있다.
죽는 그날까지 조금의 의식이라도 남아 있고 손을 움직일 기력이 있다면 시를 쓰고자 했던 성실함을 대변한다. '어려운 말 하는 사람 믿지 않고/ 유식한 글 쓰는 사람 따르지 않고/ 쉬운 말 우리 말로 살아가는 사람/ 바르고 깨끗하고 아름다워라'란 시구에는 평생을 우리 말과 글을 가꾸는 데 노력해 온 얼이 깃들어 있다.
40여 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며 손수 집안일을 했던 선생은 요리와 바느질 등 섬세하고 여성스러운 생활의 즐거움을 노래한 시들도 남겼다. '조그만 오지솥그릇에/ 찌개를 끓인다/ 된장을 풀어 넣고/ 풋고추 한 개 썰어 넣고/…/ 보글자글 보글자글/ 된장찌개 소리로/ 하루를 시작하는 기쁨을/ 세상의 남자들은 모르고 살았지/ 여자들에게 빼앗겨 있었지/ 바보 같은 남자들.'
이번 시집에는 죽음 가까이 와서 쓴 시 두 편이 실렸는데, 같은 길을 걸어온 동료이자 벗인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을 생각하며 쓴 것이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사정을 알고는 '오백 번을 씹어서라도 밥을 꼭 먹어야 한다'고 걱정해주는 권 선생에게 눈물이 난다고 써놓았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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