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식당업 젊은 돌풍 '2030의 힘-<下>맛을 바꾸다

"모든 메뉴를 進化시켜라…안 튀면 도태"

2030은 대구 음식 산업의 가장 강력한 소비자다.맛있는 음식을 찾아 마음껏 즐기는 '맛 모임'이 유행이고 2030의 맛 코드는 보수적인 대구 맛 문화에 적잖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맛, 즐기다

공무원 김주영(27·여)씨는 올초부터 매달 1차례 대구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대학 선후배들과 맛집을 순례한다. 6명이 번갈아가며 맛집을 선정하고, 맛 순위를 기록하는 방식. 한·중·일식, 양식을 가리지 않고, 최고급 패밀리레스토랑부터 2천 원짜리 허름한 식당까지 맛있는 집이라면 가격이나 분위기는 상관없다.

김씨는 "맛집을 소개하는 TV프로그램과 인터넷 사이트가 봇물을 이루면서 요리에 대한 2030의 관심이 폭발적"이라며 "주 5일 근무가 보편화되면서 전국 맛집을 찾아 떠나는 모임들도 주위에 많다"고 했다.

맛에 죽고 사는 2030은 인터넷에도 몰려 포털 다음 카페에는 대구에서 활동하는 맛 모임만 50개가 넘는다. 많게는 수만 명, 적게는 수 명에 불과한 크고 작은 모임들. 올해 개설한 카페만 10개를 웃돌고, 수성구 2030 맛기행, 대달맛(대구 달서, 달성 맛집 여행) 등 지역별 모임에 매사모(매운맛을 사랑하는 대구경북모임) 같은 색다른 동호회들도 있다.

대학생 최지은(21·여)씨는 "맛 모임이 대학동호회로 발전할 정도"라며 "동호회 회원들은 인터넷을 통해 대구의 '죽여주는 술집', '분위기 좋은 찻집', '싸고 맛있는 밥집', '생소한 외국요리', '전국의 맛집' 등 다양한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고 했다.

시내 김치통갈비 이상민 사장(37)은 "음식사진을 찍고 미니홈피, 블로그,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음식 맛을 알리는 젊은 사람들을 쉽게 발견한다"며 "취미수준을 넘어 전문가 이상의 식견으로 활동하는 2030은 대구 외식시장의 흐름을 주도하는 세력"이라고 말했다.

◇매운맛

"기성세대의 전유물로만 여겼던 매운맛에 2030이 흠뻑 빠졌어요."

2003년 12월 동성로 로데오거리에 (辛)고불(고추장불고기) 1호점을 연 이봉균(37)사장은 "매운맛 열풍은 닭 요리가 주도하고 있다"고 했다. 너무 매워 속에 불이 난다는 '불닭' 체인점들이 지난 2년 새 동성로에만 10개 넘게 들어섰다는 것. 고불은 고추장 소스로 새롭게 매운맛 경쟁에 가세한 닭 전문점으로 2년 만에 13개 체인점을 확보했다.

매운맛을 강조하는 닭꼬지전문점들 역시 봇물을 이루고 있다. 업계는 100여 개에 이르는 대구 꼬지 체인점들이 올 초 300개 가까이 급증했다고 전했다. 꼬지1번지 박성현(38)부장은 "순한맛, 매운맛, 폭탄 1, 2, 3 순으로 매운맛을 더한 메뉴가 인기"라고 말했다.

일명 '불요리'라 불리는 술 안주도 유행을 타고 있다. 시내에서 소주방을 운영하는 이민수(35)씨는 "일대 소주방 대부분이 지난해부터 불삼결삽, 불닭갈비, 불오징어, 불꼬치 메뉴를 추가했다"고 말했다.

◇2030을 잡아라-고가

음식에 대한 20, 30대의 영향력은 대구 음식업계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웰빙, 전문화를 통한 고가전략. 쓸땐 과감하게 쓰는 2030세대의 소비 성향을 노린 것.

지난해 말 북구 칠곡에서 '케익하우스 서'를 창업한 서명훈(32) 사장은 "일반 베이커리보다 15~20% 이상 비싸지만 건강에 좋다는 식이섬유밀가루로 빵을 만든다"고 했다.

서씨 가게를 찾는 고객들은 70%가 20, 30대 여성들. 살찌지 않기 위해서, 내 아이의 '건강'을 생각해서 식이섬유 베이커리만 찾는다고. 식이섬유 베이커리 집은 지난해 4월 이후 9곳으로 늘었고, 대구에서 시작해 서울, 부산, 울산 등지로 퍼져나가고 있다.

동성로 '이치로'는 5년 전 대구에 가장 먼저 등장한 퓨전 일식돈가스전문점으로 역시 20, 30대가 주고객이다. 6천~1만8천 원에 이르는 가격대가 다소 부담스럽지만 일반 돈가스점과 달리 10여 가지가 넘는 새 메뉴들을 선보이고 있다.

강창구(33) 팀장은 "김치와 돈가스가 만난 김치나베나 우동육수와 돈가스를 결합한 가츠나베는 이치로에서만 맛 볼 수 있는 독특한 요리"라고 말했다.

대구 음식업계는 "패스트푸드 시장 침체 속에 두부, 녹차, 올리브, 들깨 등을 가미한 웰빙 음식들과 일식돈가스, 회전초밥전문점 등이 급부상 중"이라며 "동성로엔 최근 2년 새 15~20개에 이르는 일식돈가스와 대여섯 개의 회전초밥전문점들이 한꺼번에 생겨났다"고 전했다.

◇2030을 잡아라-저가

고가메뉴가 웰빙, 전문화를 통해 2030세대를 끌어들인다면 가격파괴를 통한 저가메뉴는 경기불황으로 좀체 지갑을 열지 않는 20, 30대들에게 인기다.

동구 우방강촌마을 앞 삼겹살골목에는 3개월 전부터 1인분에 1천500원짜리 대패삼겹살이 등장했다. 지난 1, 2년 새 대학가를 점령한 대패삼겹살이 주택가에서도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것. 대패로 썰 듯 얇게 자른 삼겹살은 불판에 올려 놓고 2, 3초만 기다리면 바로 구워진다.

돈마당 장성창(41) 사장은 "부산에서 3년 전부터 유행한 대패삼겹살이 대구 고깃집들의 부메뉴로 등장하고 있다"며 "값이 싸 20, 30대들이 가장 선호한다"고 말했다.

동성로 로데오거리엔 2년 전부터 뷔페식소주방이 인기몰이 중이다. 기본 안주 하나만 시키면 중식, 양식, 분식 등 30가지 이상의 요리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 경기 불황으로 1, 2, 3차 옮겨다니는 대신 한 식당에서 술과 밥을 한꺼번에 해결하려는 20, 30대 직장인들이 주로 찾고 있다.

하자소주방 신광식(33) 사장은 "20, 30대 젊은 주방장들을 채용해 사천요리, 인도식 닭고기철판, 미국식 양념감자 등 20, 30대들이 즐겨 찾는 메뉴를 갖췄다"고 했다.

소주방에서 만난 회사원 신지은(26·여)씨는 "쿠폰 가맹점에 가입한 뷔페식소주방은 잘 만 활용하면 20% 할인혜택까지 받을 수 있다"며 "4인 기준으로 2만 원만 있으면 실컷 마시고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고 했다.

기획탐사팀=이종규기자 jongu@imaeil.com, 이상준기자 all4you@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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