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성미의 영화속 정신의학-친절한 금자씨

'복수의 칼날' 뒤엔 母性이…

이 영화는 친절하고 아름다운 금자씨가 벌이는 복수극이다. 금자씨는 어린이 유괴 살인이라는 죄명으로 교도소에 간다. 그녀 나이 스무 살 때의 일이다. 끔찍한 범행을 저지르기엔 너무 어리고, 너무나 아름다웠던 금자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수감된 13년 동안 그녀는 오직 한 가지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자기를 살인자로 몰아간 백 선생에게 향한 복수심이었다. 스무 살에 미혼모가 된 금자는 유괴행각을 일삼는 백 선생의 심부름꾼 노릇을 하였다. 백 선생이 유괴한 아이를 금자가 돌보는 것이 세간에 목격되었고, 그래서 금자는 살인용의자가 되었다. 백 선생은 금자의 갓난아기를 볼모로 그녀에게 죄를 덮어씌웠다. 금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범행을 자백했다. 딸이 백 선생 손아귀에 있었으므로.

백 선생은 반사회성 인격장애자였다. 유괴로 번 돈으로 요트를 사려고 하는 등 자기 쾌락과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거짓말을 일삼고, 가명을 사용하면서 사기 치는 일이 허다했다. 어린이를 유괴 살해하고도 동정심이나 양심의 가책이 전혀 없었다. 말솜씨가 유창하고 겉치레가 그럴듯하여 강의를 하고, 어린이 영어학원의 유명 강사 행세를 버젓이 하고 다녔다.

백 선생은 무정자증이었지만, 금자는 어린 나이에 임신을 했고, 2세를 가질 수 있는 딸을 출산함으로써 백선생과는 대조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다. 불임으로 생산성이 없는 황폐한 자신에 대한 분노와 좌절이 생산의 산물인 어린아이에 대한 공격으로 전환된 것은 아닐까.

스무살에 수감되어 서른세살에 출소한 금자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딸을 찾는 것이었다. 이제 열세 살이 되었을 딸은 해외 입양되어 있었다. 그녀는 호주까지 날아가서 딸 제니를 데려온다. 그리고는 백 선생에 대한 복수를 시작한다. 딸 제니는 그녀의 신념처럼 양심처럼 그녀를 지켜보고 있다.

금자의 교도소 생활을 짧은 리듬감 있는 삽화적 기억(episodic memory)으로 처리하는 영화의 흐름은 금자의 미래 행보를 예견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한다. 친절하고 약자를 동정하는 금자의 수감 생활은 죄 사함의 행위로 보여 지기도 하고, 미래의 복수를 위한 치밀한 준비로 보여 지기도 한다. 친절한 금자씨이기도 하고 악녀 금자씨 같기도 하다.

현재의 목적이나 신념은 과거 회상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과거 기억에 대한 친밀감과 생생함의 정도는 시간에 따라 변할 수 있고, 기억에 담긴 감정적인 요소, 개인의 성격, 연관된 많은 다른 요인에 따라 변형될 수 있다. 금자는 스무살에 경험한 자신과 딸의 운명을 매일매일 곱씹으며, 13년이 흘러도 어제 일처럼 생생했으리라.

만약 금자에게 생존한 딸이 없었다면, 과연 복수를 감행했을까. 친절한 금자씨로 죄 씻음을 하며 구원을 바라지 않았을까. 이 영화는 긴 세월동안 복수의 칼날이 무디어지지 않은 이유를 모성에 두고자 하였다. 어디선가 살아서 매일 숨쉬고 있을 딸의 존재는 13년이란 시간이 아무 거리감 없이 느끼게 하고, 복수심이 잦아들 수 없었던 근원을 제공한 것 같다. 독특한 결속인 무조건적인 사랑인 모성. 복수의 유일한 이유가 되었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는 복수의 끝에 남은 실존적 허무와 텅 빈 그녀의 영혼이 클로즈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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