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르포> 경주 방폐장 후보지 민심

방폐장 관련 논의 초기단계였던 지난 6, 7월 경주시 양북면 거리에는 현수막이 많이 내걸렸다. '방폐장 유치해 지역발전 앞당기자'는 찬성론자와 '지역발전 가로막는 방폐장 결사반대' 등의 구호가 적힌 것들이 좁은 바닥에 10여 개씩 내걸렸다. 하지만 논의가 달아오른 지금은 오히려 조용해졌다.

"서로 고함지를 이유가 없잖습니까. 일단 여유를 갖고 차분하게 지켜보자는 뜻이지요. 득실을 따져본 다음 결정을 해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근거가 부족하거든요." 지난 24일 면사무소 앞에서 만난 60대 농민은 섣불리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며 "주민들 대다수가 비슷한 생각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모(51)씨도 비슷한 말을 했다. 그는 "방폐장을 유치했을 때 우리에게 어떤 혜택이 주어질지에 대한 약속이 없어요. '3천억 원+α'라는 식의 막연한 약속으로는 우리동네를 설득하기는 어렵지요. 우리는 그 시설을 직접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데…."라며 구체성이 떨어지는 말만 듣고 결정할 수는 없다고 했다.

직접 만나본 이곳 주민들은 방폐장에 관한한 찬성도 조건부, 반대도 조건부였고 이 '조건'은 우리에게 어떤 반대급부를 줄 것인가에 달렸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았다. 김모(51)씨는 "기존 4기와 신월성 1, 2호기 등 원전이 가득찬 마당에 부가혜택이 있는 방폐장을 타지역에 넘긴다는 것은 '죽 쒀 ×주는 꼴'"이라면서도 "방폐장에 붙여 경주전역에 주어질 혜택과는 별도로 인근 지역에는 뭔가 뚜렷하고 확실하게 지원해줘야 한다"고 조건을 달았다.

"방폐장을 반대한다"고 말한 김모(58)씨도 "현금보상이나 취업약속, 마을 공동소득원 보장 등 드러나는 조건이 주어지면 모를까 지금 원전처럼 얼렁뚱땅 들어와서는 눌러앉아 버리를 식이라면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역시 조건부 반대였다.

경주방폐장 후보지인 양북면 봉길리 시굴조사 지점은 현 월성원전 정문에서 직선거리로 400m 남짓한 거리에 있다. 착공이 예정돼 있는 신월성 1, 2호기 부지안이다. 양북면 전체 주민수는 5천여 명이고 핵심지역인 봉길리 주민은 1, 2리를 합쳐 500여 명. 이곳 주민들의 생각은 어떨까.

삶의 터전을 원전 측에 내주고 이주를 해야 하는 봉길리 이주대책위원장 최상곤(51)씨는 "우리동네 주민들은 입장유보"라고 전했다. 최씨는 "어떤 약속이 나올지 두고 보는 중"이라며 "'3천억 원+α'는 방폐장 유치 자치단체에 주는 것이고 우리 동네에 주어질 '진짜 α'를 보고 의사를 결정하자는 데 뜻이 모아지고 있다"고 했다.

경주 방폐장 후보지인 양북면의 민심은 '극도의 불신감'이 정부와 경주시, 원전을 가동하는 한수원이 모두 한통속으로 주민들을 우롱했다는 주장이다.

한 횟집주인은 "몰려가서 데모하면 지원책이 커졌고 조용히 있으면 입 닦는 게 지금까지 정부가 원전 인근 주민들에게 보여온 태도"라고 지적했다. 그는 "원전이 들어서면 좋아질 것이라는 말에 동의했는데 지난 30년간 달라진게 없다"며 "이번에는 정말 손익을 따져볼 작정"이라고 했다.

경주·박정출기자 jcpar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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