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판 아이디어 회의 시간. "이제 휴가철도 끝났으니 가볍게 즐기면서 여름을 마무리할 만한 것이 없을까"라고 운을 떼던 부장. 갑자기 번지점프 이야기를 꺼낸다. "그냥 소개하는 건 재미없겠고 직접 기자가 뛰보고 체험담을 쓰면 어떨까?" 심상찮은 분위기. 부장과 다른 선배들의 눈초리가 애써 눈길을 피하려고 고개를 떨구고 있는 내게로 떨어졌다. "전기자. 번지점프 체험 한번 해보지." 오지않아도 될 것은 꼭 온다. 놀이공원에 가도 이런저런 핑계로 청룡열차도 안타는 나에게 번지점프라니. 한 선배는 한술 더 뜬다. "이미 흉가체험이다, 전생체험이다 해서 망가질 대로 망가진 몸(?)인데…."
벌써 모두들 기정사실하는 분위기. 남의 속도 모르고 "재밌겠다"며 웃어댄다.
번지점프를 하려고 애써 마음을 다잡았지만 날씨가 도와주질 않는다. 연일 추적추적 내리는 비 탓에 번지점프 체험이 계속 미뤄졌다. 부장에게 '뛰지마라는 하늘의 계시인 것 같다'고 애원도 해봤지만 매정하게 다음주에 해도 하고 오란다. 한 선배는 자신의 체험담을 이야기하면서 겁을 잔뜩 준다. "꼭대기 점프대에 서니까 다리가 자동이데. 후들후들 떨리더라구." 커져가는 두려움. '나는 할 수 있다'는 암시를 수십번 거듭했다.
23일 오전 드디어 운명의 날이 왔다. 모처럼 하늘이 청명해져 번지점프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마감일의 압박에 시달리던 기자에겐 어쨌거나 반가운 일이었다. 체험 장소는 우방타워랜드 번지점프장. 아래에서 올려다 본 35m 번지점프 타워는 예상보다 그리 높지 않았다. "별 거 아니네"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번지점프대를 운영하는 홍성보(27)씨는 "꼭대기에 선 것과 아래에서 보는 것은 천지차입니다. 여긴 또 지대가 높아 더 높게 느껴져요"라며 딴지를 건다.
5년이 넘는 동안 수만명을 태워봤다는 홍씨는 기자가 무장을 하는 동안 알짜정보(?)를 털어놓는다. "마음먹고 오는데도 신청자 10명 중 한명 정도는 포기합니다. 신기한 건 여자보다 오히려 남자가 더 많이 포기한다는 거죠." 그 이유인 즉, 여자들에게는 설득이 잘 먹히는 반면 남자들은 고집이 세서 포기하겠다 마음먹으면 아무리 옆에서 달래도 안된다는 것.
번지점프대에 섰다. 그저 시원하게 목덜미를 간질이던 바람이 하늘에선 사납기 그지없었다. 얼굴이 하얗게 되고 까마득한 바닥은 단 한 번도 디뎌보지 못한, 닿지 못할 땅이었다.
"아파트 12층에서 그냥 뛰어내리는 것과 같다"라는 홍씨의 말이 생각났지만 더 머뭇거리다간 기사고 뭐고 포기할 것 같아 그냥 머리를 비웠다. 그리곤 크게 심호흡. 하나, 둘, 셋, 얍! 온몸이 허공을 가르는 사이 정신을 잠시잠깐 잃었다. 끝없이 떨어지는 느낌에 눌려 소리도 제대로 못 질렀다.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땐 밧줄에 걸려 공중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아, 살아있구나. 홀가분함과 허탈감에 한동안 멍하니 자리에 주저앉았다. 겨우 15초간의 경험이었지만 해냈다는 성취감이 짜릿하게 전해져왔다. 이래서 사람들이 번지점프를 하는구나.
순간, 난데없는 날벼락. "전기자, 사진이 별론데 다시 뛰어야겠어." 사진부 선배가 실실 웃는다. "죽어도 절대 못 뜁니다." 무작정 버텼다. 선배의 계속 꼬드기는 말에도 넘어가질 않았다. 그렇게 선배와 밀고 당기는 실랑이(?)가 벌어지는 동안 30대로 보이는 남녀 5명이 우르르 몰려왔다. 경남에서 온 그들은 이곳 번지점프를 하려고 대구에서 1박까지 했단다. 김은주(31·여·김해 진영읍)씨는 "인생 사는 것보다 무섭겠어요"라며 아무 거리낌없이 점프대로 올라간다. "나는 할 수 있다"라고 3번 외치고는 주저없이 뛰어내린다. 순간 그녀가 용맹스런 여전사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조재순(31·여·창원시 면서동)씨는 점프대에 올라 계속 머뭇머뭇거린다. 여러번 숫자만 세더니 점프대에서 꼼짝을 못하는 것이다. 결국 조씨는 포기 선언. 같이 온 친구 김씨와는 대조적이다. 하지만 조씨가 지극히 여성으로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돌아오니 부장이 물었다. '자유가 보이더냐?' 그냥 웃었지만 속으로 '자유는 커녕 공포만 보이데요'라며 '또 이런거 시키면 칼부림날 줄 아세요' 라고 쏘아붙였다. 우방타워랜드 번지점프장 016-811-6585.
글·전창훈기자 apolonj@imaeil.com 사진·정우용기자 sajah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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