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남아시아 근로자들의 난생처음 스케이트 나들이

26일 오전 11시 대구 북구 실내빙상장 입구. 외국인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 10분 가량 지나자 그 숫자는 20여명으로 늘었다. 빙상장측이 이날 하루 고국을 떠나 대구지역 공단에서 청춘을 바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마음껏 얼음을 지칠 수 있도록 초청한 것.

이들은 대구에 몇 년째 살면서도 공장과 기숙사, 동네 구멍가게 밖에 모른다. 대부분 일을 마치면 같은 처지의 외국인 근로자들과 기숙사 한쪽 구석에서 고단한 하루를 잠으로 떼운다.

그런 이들에게 지난 밤 대구외국인상담소 김경태 목사가 전해준 소식은 내내 마음을 들뜨게 했다. 피곤함으로 눈꺼풀이 자꾸 아래로 향하지만 난생 처음 "스케이트를 타러 간다"는 말에 '소풍'가는 어린이들처럼 걸음은 가벼웠다.

성서공단에서 알루미늄 도색 일을 하는 이맘(30·인도네시아)씨는 "이렇게 큰 얼음으로 만든 경기장을 처음 본다"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스케이트를 발에 밀어 넣고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웠으나 한발, 두발 내딛는 걸음은 엉거주춤 그 자체였다. 서로 쳐다보며 모두들 하얀 이를 드러내고 환한 웃음을 지었다. 그것도 잠시, 빙상장의 차가운 공기가 반팔 셔츠 사이로 삐져 나온 팔에 닿으면서 오돌도톨 소름을 돋게했다. 산두(24·스리랑카)씨는 "하얀 입김이 나올 정도로 춥다"며 "하지만 여름 내내 무덥고 냄새나는 작업장에서 일하며 스며든 열기가 한꺼번에 식는 것 같다"고 했다.

빙상장 밖에서 연신 두 손으로 팔을 비벼대며 스케이트 타는 모습을 지켜보던 이들도 하나 둘씩, 얼음판에 들어섰다. 그러나 한걸음도 떼지 못하고 이내 엉덩방아를 찧었다. 난간을 잡고 버텨보지만 연신 미끄러진다.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발이 내 것 같지 않다는 표정들. 그러기를 몇 차례. 몇 명은 제법 자세가 나오기 시작했다.

슈까위바와(29·인도네시아)씨와 이맘씨는 이들 가운데 실력이 제일 나았다. 슈씨는 "고향에서 타봤던 롤러스케이트가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시원스레 얼음을 지치는 동료들을 보며 "부럽다"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라자(24·인도)씨는 "다리가 후들거리고 넘어지는 바람에 엉덩이도 아팠지만 잠시라도 피곤을 잊을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었다"며 자신들을 초대해준 관계자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실내빙상장 조병윤 전무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향수를 달래고 언제가 고국으로 돌아갔을 때 대구, 넓게는 한국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간직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했다.

최두성기자 dschoi@imaeil.com

사진 : 대구지역 공단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26일 대구빙상장을 찾아 스케이트를 타다 넘어지며 웃음을 짓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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