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 중의 하나가 '휴가'라는 단어다. 이제 곧 9월, 우리의 대다수 근로자들은 1년 중 가장 귀중한 시간인 휴가를 거의 지낸 후일 것이다. 여름 휴가철이 지난 지금 뜬금없이 다시 '휴가'라는 말을 꺼내는 것은 휴가기간 느꼈던 휴가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서이다.
휴가란 사전적인 의미로는 직장이나 학교 같은 단체에서 일정한 기간 동안 쉬는 일이다. 휴가라는 뜻의 언어, 바캉스(vacances)란 단어의 어원(vac, voc)이 '텅 빈 상태'를 뜻하고, 특히 바캉스라는 단어는 휴가가 많기로 유명한 프랑스에서 나왔다고 한다.
흔히 프랑스 사람들은 바캉스를 위해 사는 것 같다고 말할 만큼 그들에게 있어 휴가의 의미는 매우 크다. 그네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휴가란 일상의 삶이 추구하는 희망봉이라고까지 말할 정도이다. 연 50일 가까운 휴가기간. 그에 비하면 우리의 휴가는 너무 보잘 것 없어 보인다. 7, 8월에 집중된 여름휴가, 그것도 대부분 3, 4일에 그치고 만다. 외형적으로만 보면 비교하기가 허무할 정도이다.
그래도 짧은 휴가를 보내면서 느꼈던 것은 휴가기간에는 일을 중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간 동안만큼은 삶의 예외를 인정한다는 느낌을 가졌다. 즉 휴가란 달리 말하면 일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기간 동안 번잡한 속세를 떠나고 싶어한다.
휴가가 주는 문화적 의미에 관하여 생각해 보자. 문화는 일하는 것과 논다는 것의 복합이다. 문화는 이 두 가지 사이에서 존재하며 일하는 것과 노는 것을 연결시켜주는 다리와 같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휴가는 또 하나의 문화인 셈이다. 일상을 비우는 문화, 그것은 일상의 문화적 요소와는 다른 차원의 문화적 요소와 환경들이 휴가문화를 구성하고 있다. 그렇다면 휴가문화는 그들이 겪은 일상의 모든 억압으로부터의 해방과 새로운 상상력의 체험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휴가를 가는 사람만큼이나 사실은 갈 수 없는 사람들도 많다. 빈부격차일 수도 있고, 아니면 스스로 원해서일 경우도 있다. 나는 휴가를 아주 멋지게 보낸 사람을 알고 있다. 그는 휴가를 위해 돈을 쓸 여유가 없었지만 휴가기간 동안 그는 계속 책을 읽었고, 그리고 읽는 만큼 새로운 것을 꿈꾼다고 한다. 그러면 그런 생각이 든다. 휴가를 떠나는 이들과 떠날 수 없는 그는 책을 읽으며 같아지는구나 하고 말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걷고 달리는 것을 좋아한다. 매주 한강을 달리고 남산을 달린다. 달리면서 마음을 비우고 삶을 비워본다. 휴가가 일상을 비우고 새로운 충전을 하는 것이라면 일상에서 가끔 삶을 비우면서 마음을 여유롭게 할 필요도 있다.
도시는 바쁜 곳이다. 숨 가쁘게 삶의 양식이 달라지는 곳이 바로 우리 도시의 모습이다. 걷고 달리는 것이 어느 순간 특별하게 느껴졌던 것은 도시의 속도감 때문이었다. 마치 속도가 도시의 상징이라도 되는 듯 도시의 길에는 자동차가 넘쳐난다. 많은 이들이 자동차가 주는 경제적, 심리적인 폐해뿐만 아니라 환경오염을 말하지만 자동차의 대수는 끊임없이 늘고 있다. 어느 사이 빠른 삶의 속도에 자동차가 필수가 되어버린 것이다.
달리면서 문득 그 속도감에서 나를 비우는 것, 만약 많은 사람들이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기보다 느긋하게 걸어 다닌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환경에 어울리게 도시 곳곳에 공원과 벤치가 있어 걷다가 힘들면 언제든지 앉아 쉴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아무리 걸어도 별로 피곤하지 않을 것 같고 걸으면서 일상의 삶과 가까워지고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친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걸어 다닐 수 있는 도시. 그런 도시야말로 인간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기본적인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인간의 자유는 비싼 자동차를 타고 다닐 때가 아니라 걸어 다닐 때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삶을 비우는 일, 한순간의 꿈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유인촌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탄핵안 줄기각'에 민주 "예상 못했다…인용 가능성 높게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