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人生에는 은퇴가 없다-(10)길은 어디나 있다

나는 팔조령을 수 없이 넘나들며 학창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길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 서울에 살 때는 편한 경부고속도로를 놔두고 일부러 문경새재 쪽으로 귀향길을 잡은 적도 많다. 3관문에서 1관문까지 풋풋한 흙냄새를 맡으며 내려오다 보면 옛날 길손들이 쉬어가던 주막이 모퉁이 뒤에서 튀어 나올 것 같은 착각에 빠져 들기도 했다.

옛 길이 귀한 만큼 새 길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비단 왕래가 편리해질 뿐만 아니라 그 길을 따라 산업이 생겨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취임 직후 '21세기 신경북 비전'이라는 것을 만들었는데, 그 속에는 경북도내 어디에서나 30분내에 고속도로 진입이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약속도 있었다. 아직까지 100% 다 지키진 못했지만 그동안 중앙'중부내륙'대구~포항간 고속도로가 잇따라 개통되면서 우리네 생활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차가 다니는 길만 길은 아닐 것이다. 본디 길의 목적이 소통에 있기에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만나는 통로라면 모두 길이라 칭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전에 없던 길을 하나 만든 보람을 가지고 있다. 바로 도청과 시'군을 연결하는 '영상회의시스템'이다. 내가 영상회의를 처음 접한 것은 1996년 말레이시아를 방문했을 때였다. 우리나라의 경기도에 해당하는 술랑고르의 주지사 집무실에 앉아 멀리 떨어진 시장'군수 두 명의 환영 인사를 영상으로 받았다. 비록 이전부터 정보화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뜻밖의 광경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귀국하자마자 바로 영상회의를 도입할 것을 지시했는데, 전문가들과 토론하는 과정에서 결국 예산만 낭비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만만치 않게 제기됐다. 그러나 나는 정보화에 앞서가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밀어붙였다. 물론 처음 개통했을 때는 화면을 보며 대화하는 것이 무척 어색하고 불편했다. 하지만 점차 영상회의에 익숙해지고 예산 절감 등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자 사람들은 자연스레 새로 난 길에 모여들었다. 이후 국민의 정부 시절에는 국무회의에서 내가 직접 성공사례로 보고했고, 중앙정부와 다른 자치단체에서도 벤치마킹해 비슷한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언젠가 2천 년 전 동서양을 대표했던 중국과 로마의 차이에 관한 재미있는 분석을 본 적이 있다. 중국은 만리장성 안에 스스로를 가둔 반면 로마는 점령지역 곳곳으로 연결되는 길을 닦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역사가 말해주듯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길을 만들고 외부와의 소통에 막힘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경북이 처음 만든 광속(光速)도로, 영상회의시스템은 소중하다.

이의근 경북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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