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단어 하나하나를 자신의 머리에서 뽑아 쓰듯 감독은 이미지를 스스로의 뇌수에서 하나 하나 끄집어 내 영화를 완성한다. 시를 쓰는 사람에게 자꾸 이것저것 설명을 덧붙여야 한다면 되겠나? 영화에 서사만 강조된다면 그건 그림얘기 책이지 영화라고 할 수 없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이명세 감독이 영화 '형사 Duelist'로 관객들에게 돌아온다. 그가 6년만에 선보이는 이 영화는 사극에 형사물이지만 자신의 전작 어떤 영화보다도 '영화적'인 영화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역모를 꾀하는 무리들과 그들을 잡으려는 포교들 간의 대결, 그리고 자객 '슬픈 눈'과 여형사 '남순'의 러브스토리가 이 영화의 기둥 줄거리. 하지만, 이 영화를 이렇게 간단히 '정리'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넘나드는 감독의 카메라는 원래의 시간과 공간을 재구성하며 날아다니고, 두 남녀간 사랑의 감정은 달콤한 언어가 아닌 검과 검이 부딛치는 대결로 전개된다. 간단한 줄거리이지만 영화가 전개되는 방식은 서사라기보다는 이미지의 향연. "영화는 시"라며 그가 들려주는 얘기는 '형사 Duelist'와 스스로의 영화 세계에 대한 가장 명쾌한 설명이다.
1일 청담동에 위치한 제작사 프로덕션M의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낮 시간임에도 아직 잠이 덜 깬 모습이었다. 기자시사회 이후 이날 오전까지 밤을 세워가며 사운드 수정 작업을 해왔던 그는 인터뷰를 앞두고 막 1시간여의 단잠을 잤다 깨어난 터였다.
다음은 이 감독과의 일문일답.
--복귀작이 무협물이라는 게 다소 의외다.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작업이었는데 제작비가 부족해서 미뤄뒀었다. 빛이나 인물의 움직임 등을 자연스럽게 사용해 영화만이 가능한 표현들을 할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움직임 속에 생각과 사랑을 담아낼 수 있고 또 장르로서는 대중과 가까이 있는 까닭에 예전부터 관심이 많았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기존의 사극과는 다른 느낌이 많다.
▲고증보다는 상상력을 통해 개연성 있게 그 시대 사람들을 표현하려 했다. 옛날 사람들이라고 해서 흰 옷과 단정한 옷차림을 했다는 것은 편견이다. 여형사라면 뛸 때 옷이 거추장스러웠을테니 묶고 뛰는 게 당연하고 당시에는 서로 맞지 않은 색깔로 옷을 기워입던게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인물의 배경에 대한 설명은 없는 편이다.
▲인물에 대한 자세한 설명까지 붙여가며 서사적으로 풀면 러닝타임은 4시간도 넘어갈 것이다. 문신 하나만 봐도 인물의 성격을 알 수 있지 않나. 자상한 말투이지만 등을 돌리고 얘기하는 병조판서(송영창)의 모습을 통해 내러티브를 생략한 채 짧은 시간에 야비한 인물임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줄거리보다 이미지에 더 신경을 쓴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오해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다. 영화는 원래 서사로 탄생하지 않았고 서사도 아니다. 예전에 비해 이런 오해가 많이 줄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관객들이 '형사'를 충분히 좋아할 것으로 생각한다.
--강동원이 연기하는 '슬픈 눈'에는 대사를 극히 제한했다. 어떤 이유에서인가.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안성기의 대사를 없애 국민배우로서의 고정관념을 없앴던 것과 같은 의도다. 강동원은 한국에서 아이돌 스타이지만 내 영화에 출연하는 순간 전체 미쟝센의 한 부분이 된다. 기존의 선입견에서 연결된 이미지가 아니라 내 영화속에서 별도로 존재하는 이미지를 만들고 싶었다.
'슬픈 눈,' 누가 봐도 멋있고 강한 인물이다. 그래서 대사도 극도로 줄였고 그림자 속에 감춰서 신비감을 준 것이다.
--하지원은 어떤 장점을 보고 캐스팅했나.
▲스타이면서도 고정된 이미지가 없는 게 좋았다. 여성스러운 모습에서부터 귀엽거나 깡패같거나 하는 여러가지 모습을 표현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성실하고 진지한 연기자다.
--음악이 오페라 아리아에서 가야금. 왈츠풍,록까지 다양하다.
▲조성우 음악 감독에게도 영화의 배경이 되는 음악이 아니라 영화 음악이라는 말을 했다. 음악을 통해 충돌과 묘한 조화, 웃음 등의 의미를 담아내려 했다.
--일부에서는 미국에서 좋아하는 무협물이라는 점이나 영화 속의 일부 영어 자막 등을 지적하며 북미시장을 겨냥한 영화가 아니냐는 오해도 있다.
▲영화야말로 전세계적인 언어고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게 한국 영화의 미래를 위해 좋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마치 그것만을 겨냥해 영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좌포도청을 설명하는 한글자막과 함께 나온 영어 자막은 그 자리에 나중에 다른 (영어)자막이 덧붙여지는 것을 원치 않아서 집어 넣었다.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 관객들이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스타로서 강동원의 이미지나 기존 영화에서 안성기의 느낌을 놓고 고민할 수 있었겠는가.
--미국 시장 진출은 어느 정도 진행 중인가.
▲올해 초 칸영화제에서 공개된 프로모션 필름의 반응이 좋아서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의 관심이 높다. 8일 개막하는 토론토 영화제에서 월드프리미어를 갖는다. 미국에서 연출을 준비하던 것은 일단 보류상태다. 차기작으로 구상 중인 영화도 있고 미국에서 건너온 시나리오도 읽고 있기도 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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