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 두 켤레에 칫솔, 치약만 챙겨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집도 가게도, 세간도 모두 물에 잠겼으니 막막하기만 합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타격으로 26년간 일궈온 뉴올리언스의 생활 터전이 고스란히 물에 잠긴 교민 한명호씨는 "이제 홈리스가 됐다"며 허탈해했다.
뉴올리언스 지역의 피해 현황과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31일(현지시간) 휴스턴의 한 식당에 모여 앉은 이 지역 교민 네 명의 사정은 모두 비슷했다. 한결같이 "십수 년간 폭풍우가 몰아쳤다 잠시 피하면 괜찮아졌으니 이번에도 별일 없겠지"하며 몸만 빠져나왔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최근에 집을 사고, 40만 달러를 들여 완전히 새 가게를 낸 사람도 있다"며 "그 사람 심정에야 비기겠느냐"고 자위하기도 했다. 그 사람은 보험 한 푼 안 들고 신용도 없어 재기조차 어려울 것이라는 걱정도 나왔다.
"나는 돈을 투자해 운영하는 가게나 사업장이 없는 월급쟁이니 크게 걱정할 게 없다"(임정태씨)거나 "나는 그래도 보험을 들어 다행"(박병욱씨)이라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2천 명이 넘는 뉴올리언스 교민들의 사정은 어찌 보면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것이 물에 잠기는 비극을 면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이제 뉴올리언스는 텅텅 빌 겁니다. 썩는 냄새가 진동을 한답니다. 배수구가 다 뒤집혔고 음식에, 화학물질에 모든 것이 뒤섞였으니 냄새가 얼마나 나겠습니까. 날씨는 푹푹 찌고 인근 늪지대에서 몰려든 악어에, 독충까지 득실거릴 테니… 뉴올리언스는 이제 완전히 폐허가 돼버린 겁니다." 이들의 입에서는 "하느님도 무심하시다", "평생에 이런 일은 정말 처음이다", " 너무나 기가 막혀 어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는 등의 푸념 섞인 말들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들의 푸념과 한탄은 이내 피땀 흘려 일궈낸 삶의 터전을 쉽게 포기할 수 없다는 미련으로 바뀌었다.
24년을 뉴올리언스에서 살아온 박병욱씨는 "이번 주말에라도 당장 집과 가게를 둘러보러 시내로 들어가 볼 작정"이라고 결연하게 말했다.
시 당국은 앞으로 한 달간은 출입을 금지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내 집과 사업터전이 어떻게 됐는지 꼭 봐야겠다"고 박씨는 고집했다. 그래서 이번 주말쯤 남자 몇 명이 휘발유와 물, 음식을 준비해서 갈 수 있는 데까지 시내로 들어가볼 계획이라고 박씨는 밝혔다.
"한 번 가서 보고, 영 안 되겠으면 빨리 포기하는 게 오히려 낫지 않겠나"라는 게 그의 심정이다. 물이 빠지면 큰 발전기를 공동으로 구입해서 복구작업을 서두르자는 이야기에는 모두 맞장구를 쳤다. 전기가 다시 들어오려면 몇 달이 걸릴지 모르니, 큰 발전기를 설치해 놓고 몇 집이라도 먼저 들어가 숙식을 하며 복구작업을 하자는 얘기였다.
그러나 한순간 의욕에 차오르는 듯하던 이들의 표정은 이내 어두워졌다. 당장 처자식들의 거처를 어디로 옮길 것인가를 놓고 의견을 주고받던 이들은 '정말 홈리스'라는 말을 되뇌이며 근처 모텔로 발길을 돌렸다.
휴스턴연합뉴스
사진: 뉴올리온스 교민 허리케인 피해 대책 논의-허리케인 카트리나의 타격으로 큰 피해를 입은 미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온스 교민들이 31일(현지시간) 휴스턴의 한 식당에 모여 피해현황과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휴스턴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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