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폭발사고>대구시민들, 놀라운 위기 대처

"한순간에 벌어진 상황이었지만 모른 채 뒤돌아선 주민들은 없었어요."

폭발사고가 난 건물 맞은 편 인근 임선숙(57·여)씨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믿기지 않았다. 목욕탕 건물에서는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고, 거리는 온통 폭발로 깨진 유리조각들이 덮혀 있었다. 미처 빠져 나오지 못한 사람들이 "살려달라" 비명을 질렀다. 그때 한 시민이 사다리를 건물에 댔지만 높이가 충분하지 못했다. 급한 나머지 사람들이 무작정 뛰어내리려고 했다.

임씨는 '이러다 큰일나겠다' 싶어 집으로 달려갔다. 두툼한 솜이불을 들고 다시 사고현장으로 달렸다. 이불을 바닥에 깔자 몇 명이 그 위로 뛰어 내렸다. 너무나 다급했던 상황. 목욕탕에 있던 여자 손님들은 옷가지도 챙기지 못한 채 밖으로 나왔다. 임씨는 다시 집으로 달렸다. 커튼을 뜯어 몸을 가려줬다. "생각할 겨를도 없었어요. 그저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찾아 주위를 마구 달렸죠. 나중에 보니 신발에 온통 유리조각이 박혀 있더군요."

목욕탕 폭발사고 현장에서 대구시민들은 놀라운 위기대처 능력을 보여줬다. 이웃 주민들은 폭발음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도 전에 "살려달라"는 사람들을 향해 목욕탕으로 몰려들었다.

이병찬(66)씨는 사고 직후 파편에 다리 등이 찢어져 피를 흘리는 50대 여성을 들쳐 업고 병원으로 내달았다. 이씨는 "아주머니가 병원으로 데려가 달라는데 구급차가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목욕탕 안은 치솟는 화염과 연기로 앞도 분간할 수 없는 급박한 상황. 때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못하고 나온 여성들이 대부분이었다. 시민들은 이들에게 입고 있던 옷을 벗어주기도 하고 집안에 있던 커튼이며 야외용 돗자리를 갖고 와 몸을 가려주기도 했다.

시민들은 소방차가 도착하고 본격적인 구급활동이 펼쳐지기 전까지 민간 구조대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

현장에 있던 소방관과 경찰은 "급박한 상황에서 주민들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구조활동을 펼쳤다"며 "성숙한 시민의식이 더 큰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두성기자 dscho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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