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나고 이야기했던 시인들의 이야기를, 내가 읽거나 들은 시인들의 나지막한 음성을, 혹은 그들의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들을 나 혼자만 기억하고 있기에는 너무 소중했습니다. 산문의 형식을 빌려서라도 이렇게 전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인 이기철씨(영남대 국문과 교수)가 '쓸쓸한 곳에는 시인이 있다'란 시인의 풍경을 그린 산문집을 문학동네에서 펴냈다. 이 교수가 소개한 시인들은 21명. 이름만 들어도 시 한 편 정도는 떠오르는 한국을 대표할 만한 저명 시인들이다.
이 교수는 이 산문집을 통해 문인으로 보낸 30여년 동안 가까이서 보고 느낀 시인들의 자그마한 일상과 사건 그리고 문단의 이야기들을 잔잔하게 들려준다. "오랜 세월 시를 써오면서 세상의 슬픔을 자기 슬픔처럼 끌어안고 세상의 아픔을 자기 아픔으로 보듬는 시인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이 교수는 청마 유치환을 김춘수 시인의 표현을 빌려 '반시인(反詩人)의 시인'으로 불렀다. 대학시절 경주여중 교장으로 재직하던 청마를 신라문화제 백일장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바위같이 묵묵한 의지의 시인이었다.
초현실주의적 경향의 모더니스트인 조향(본명 조섭제) 시인을 '청솔같이 꼿꼿한 시인'으로 기억하고 있으며, 포항 죽도시장에서 함께 술잔을 기울였던 소박하고 천진한 첫인상의 신경림 시인을 '영원한 소년 시인'으로 부른다.
협잡과 사기와 오물로 뒤덮인 현실을 질타할 줄 아는 시인이라고 평가한 고은 시인을 그릇이 큰 인물로 보았으며, 시의 연금술사로 부를 만한 황동규 시인의 시에는 매편 청동불빛이 번쩍인다고 했다.
박목월의 시에는 "김소월이 다 말하지 못하고 남겨둔 소로가 있고 그곳을 스치는 맑은 바람이 있다"고 했다. 김춘수 시인을 '천사를 만나러 간 시인'으로, 오랜 와병 끝에 고인이 된 신동집 시인을 '목숨의 시인'으로, '울음이 타는 가을강'의 박재삼 시인을 '선병질적인 시인'으로 보았다.
그리고 조병화를 '현대의 음유시인'으로, 이해인을 '수선화 같은 시인'으로, 정진규를 '들판에서 평화를 발견한 시인'으로, 노천명을 떠올리는 유안진 시인을 '조선의 여인'으로 소개했다.
"시인들과 함께 했던 평범하지만 소중한 풍경들이 문학을 사랑하고 꿈꾸는 사람들에게 '이슬비 뒤 하늘에 걸리는 무지개' 같은 자료라도 되었으면 합니다." 시인의 풍경을 그려낸 이 교수의 소박한 바람이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w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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