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이경숙(42)씨는 6일 대구 시내 대형소매점에 갔다. 쌀 코너 앞에 선 이씨는 브랜드가 20개를 넘는 쌀 포대 앞에서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점원에게 문의를 했으나 "비싼 게 좋지 않겠느냐"는 어줍잖은 대답만 들었다. 이씨는 "브랜다마다 최고라고 홍보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어떤 브랜드가 제대로 된 것인지 판단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했다.
소비자가 명성과 가치를 제대로 알 수 없을 만큼 농산물 브랜드가 쏟아지면서 애써 쌓아올린 브랜드의 명성까지 흐려지고 있다.
'너도 나도 브랜드' 현상은 이름뿐이거나 '반짝' 브랜드를 양산해 소비자 불신을 키우고, 특히 농산물 최대 성수기인 추석을 앞두고 선물과 차례상을 보러 나온 주부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다.
도내 23개 시·군의 농산물 브랜드 실태를 취재한 결과 지자체, 농협, 영농법인, 작목반, 개별농가 등에서 저마다 브랜드를 내놓고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이 중 농협은 249개, 지자체가 62개지만 영농법인, 작목반, 개별농가 등에서 출시한 브랜드는 워낙 많아 이 같은 브랜드를 제대로 파악한 시·군이 한 군데도 없을 정도였다.
지자체 관계자들은 "경북도내 크고 작은 브랜드는 천 개가 넘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 의성의 쌀 브랜드는 무려 70개가 넘었고, 상주는 품목별로 32개의 브랜드를 가진 데다 곶감과 배의 경우 90개와 40개의 개별 브랜드로 다시 나눠져 있다. 사과가 많이 나는 영주, 청송, 안동 일대 역시 크고 작은 브랜드만 100개에 이른다.
브랜드 난립은 '반짝' 브랜드를 양산해 영천은 2000년대 들어 쌀, 포도 등 200개 브랜드가 한꺼번에 생겨났지만 현재 명맥을 유지 하고 있는 브랜드는 30개를 넘지 않는다. 예천은 풋고추와 토마토를 제외하면 인지도가 낮고, 출하 때만 나왔다 사라지는 브랜드가 적잖다.
또 경북 전체의 농협 브랜드 249개 중 40%가 넘는 101개가 상표 등록을 하지 않았다.
한 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미등록일 경우 상표를 없애거나 바꾸기가 쉽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농산물 브랜드 난립은 브랜드가 아니면 판로가 막히기 때문에 농민들이 중·소 상인들의 마구잡이 브랜드 짓기 요구에 응하기 때문에 빚어지고 있다.
농협 경북지역본부는 지난해부터 경북의 주요 시·군 및 회원농협과 연합해 사과, 배, 토마토 등 8개 품목의 농산물을 '천년의 맛'이라는 이름으로 내놓고 있지만 시·군과 회원농협 중 상당수는 별도의 브랜드를 만들어 농산물을 출시하고 있다. 똑 같은 농산물이 출하처에 따라 여러 개의 브랜드로 바뀌는 사례가 생겨나고 있는 것.
경북 북부의 한 지자체는 수년째 작목반, 농협마다 양산되는 30여 개의 사과 브랜드를 통합하려 했지만 자체 브랜드를 고집하는 농민들의 반대와 농협의 비협조로 통합 진전이 없다.
농민들은 "브랜드 통합은 그 주체가 너무 많고, 통합 후 사후 관리가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수년 간 일궈온 자체 브랜드를 버릴 수도 없다"고 했다.
농협 경북지역본부 이종우 유통지원팀장은 "브랜드는 그 가치에서 승부가 난다"며 "통합 주체 및 관리 체계를 바로 세우고, 농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이뤄질 때 경북의 농산물은 명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획탐사팀 이종규·이상준기자, 사회2부 김경돈·이희대·마경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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