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르포)방폐장 후보지 군산을 가다

"에휴, 멀리 여기까지 올 게 뭐 있나요. 우린 아직 아무것도 한 게 없어요. 그쪽 얘기나 들어봅시다."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방폐장)을 홍보하는 대형 플래카드 2개가 내걸린 군산시청에서 만난 공무원들은 대구에서 왔다는 말에 경계의 눈길부터 보냈다. 후보지가 경북 3곳과 전북 군산으로 정해진 마당에 경쟁지역 민심을 자극하는 홍보는 해 봐야 손해라는 판단인 것 같았다. 군산시 국책사업추진팀 조병찬 팀장은 "주민 찬성률 조사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는데 의미가 있겠느냐"며 "시민들이 요청해 오면 설명회나 여는 정도"라고 말했다.

◆고요함 속에 바쁜 움직임

하지만 조 팀장의 말과 달리 국책팀은 쉴 틈 없이 바삐 움직였다. 직원들은 홍보행사 일정표별로 준비물을 챙기면서 이곳 저곳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다. 퇴근 시간은 밤 10~11시. 군산시의회는 지난 7월18일 18대 8로 전국 처음으로 방폐장 유치신청을 의결했다. 지난달 29일에는 송웅재 군산시장 권한대행 등이 산업자원부에 유치신청서를 제출했다.

이후 전담부서인 국책팀의 인원을 3명에서 8명으로 확대개편하고 시민홍보 활동을 강화하는 등 찬성률 끌어올리기에 '올인'하고 있다. 지난 1일에는 시청 공무원 국책사업 유치결의대회를 열었고 2일에는 공무원·대학교수 합동거리 홍보전, 3일에는 방폐장 조감도를 활용한 대형 소매점 시민 홍보전이 치러졌다. 또 대형 현수막 17개를 도심 곳곳에 내거는 한편 읍·면·동별 방문홍보를 벌이고 있다.

지난 1일 오후 7시. 국책팀 직원들을 따라 군산시 신풍동 ㅇ아파트 주민설명회를 찾았다. 이미 여러 차례 설명회가 열려서 그런지 참석주민은 20여 명뿐이었지만 모두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주민들은 원전이 있는 영광과 울진이 아직도 굴비와 대게로 명성이 높을 정도로 안전성은 문제가 없고 새만금방조제와 '비응 관광어항 건설사업'이 전국적 관광지가 될 것이라고 설명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더욱이 3천억 원의 지원금과 한국수력원자력 본사이전 등으로 지역 대학생들의 취업사정도 나아질 것이란 말에 중장년층들은 더욱 호감을 갖는 듯했다.

손녀를 유모차에 태운 채 나온 김영주(57·여)씨는 "군산 사람들이 이번에야말로 잘 생각해서 행동해야 한다"며 "쇠락해 가는 군산을 되살릴 마지막 기회인 만큼 주민들이 주변 설득에 나서야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설명회에서는 우려했던 대로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발언도 쏟아졌다. '경상도에 뺏기지 않으려면 똘똘 뭉쳐야 한다', '포항에서는 양성자가속기 유치를 위해 모 재벌기업이 홍보비를 지원하고 있다'는 등 '카더라 방송'에 주민들은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통장 공선옥(45·여)씨는 "주민을 인솔해 한달 새 영광원전과 대전원자력환경기술원을 6번 다녀 왔다"며 "방폐장을 유치 못하면 발전 가능성이 사라지는 만큼 군산을 떠나겠다고 말하는 주민들도 있다"고 귀띔했다.

◆우리의 경쟁상대는 영덕

지속적 홍보활동에 어느 정도 자신감도 생긴 듯했다. '군산 원자력을 알고 사랑하는 공무원 모임' 회장인 차정희(여)씨는 "경주와 포항은 앞설 것 같고 인구가 적은 영덕이 경쟁대상"이라며 "남은 기간 얼마나 효율적인 홍보를 벌이느냐가 관건"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모임에는 모임에는 시청 공무원 1천200여명 가운데 1천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군산 시내에서 만난 대부분의 시민들도 찬성 쪽이었다. 술집을 운영한다는 신성배(34·군산시 경장동)씨는 "아무래도 돈이 풀리면 장사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며 "장사하는 사람들은 모두 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군산시청 에너지과학도시홍보관 자원봉사자 이화숙(여)씨는 "하루 50명 정도에게 방폐장을 설명하고 있는데 조금씩 관심이 높아지는 것 같다"며 "찬성률이 꽤 높게 나올 것 같다"고 전했다.

2년전 방폐장을 두고 홍역을 치른 부안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군산의 여론이 이처럼 찬성쪽으로 형성된 것은 지역경제의 장기침체 때문이라고 시민들은 보았다. 군산은 70년대 말 32만 명을 웃돌던 인구가 현재 26만3천 명 정도로 줄었다. 한때 전북 도내 부자 가운데 5명은 군산에 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지만 기대했던 군장공단이 활성화되지 못하면서 최근 3년간 인구도 해마다 3천, 4천 명씩 감소하고 있다는 것.

군산시내 한 대형 할인점에서 만난 서남석(56·군산시 수성동)씨는 "방폐장은 지역경제를 살릴 수 있는 마지막 카드가 아니냐"며 "나이 든 중장년층일수록 방폐장에 대한 기대가 더 크다"고 했다.

이와 관련, 군산지역 언론에서도 방폐장 유치경쟁이 '2강(영덕·군산) 2중(포항·경주) 구도'라고 보고 있었다. 이곳 일간지들은 특히 가장 강력한 후보지였던 울진군의 탈락은 군산에게 더욱 유리하게 됐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투표율 1/3이상 끌어올리기 고심

인접 부안·서천 등 반대운동 거세

◆군산시의 고민

군산시 관계자들은 찬성률보다 투표율이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수차례 여론조사에서 찬성률은 줄곧 60%를 훨씬 웃돌고 있지만 이 가운데 3분의 1이상이 투표하느냐가 관건이라는 것. 군산은 현재 인구가 26만3천명으로 유권자는 19만5천 명.

반대단체들의 행보도 걱정거리. 이 지역 시민단체들이 제2의 부안사태를 경고하면서 격렬히 반대하는데다 인접한 충남 서천군과 서천지역 시민단체들마저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 행정구역은 군산시이더라도 핵관련 시설이 들어서면 농수산물 가격 하락과 관광객이 감소, 서천지역 경제가 위태롭게 된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방폐장 유치반대 거리행진 및 성명서를 발표하고 지난달 27일에는 군산시, 부안군, 서천군 반대시민단체 등 7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군산시내에서 반대 시위를 벌였다.

방폐장 인근 '비응 관광어항 건설사업' 시행사인 (주)피셔리나측도 우려의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2003년 7월 착공, 2007년 1월 완공예정인 이 사업은 15만 평의 땅을 매립, 내년 5, 6월쯤 분양에 나설 계획이다. 회사 관계자는 "호텔, 콘도, 워터파크 및 업무지원 시설을 분양해야 하는데 방폐장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 다행이나 반대의 경우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되고 있다"고 말했다.

군산시내 54개 시민단체가 연대한 군산핵폐기장반대대책위원회는 도심 곳곳에서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또 지난 3월부터 시작한 활동을 최근 강화, 동별 대책위를 구성하고 거리 서명운동으로 번지고 있다.

반대시위를 벌이던 이창복 씨는 "군산시의 방폐장 유치논리는 허구에 불과하다"며 "시민들의 격려 전화도 끊이지 않고 있어 유치신청이 군산시 뜻대로는 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박성수 반대대책위 조직1실장은 "초창기 공식 여론조사 결과 찬성비율이 62%까지 나왔으나 시민들이 진실을 알고 난 후 찬성률이 점차 떨어지고 있으며 그 비율이 뒤바뀔 것"이라며 "군산시가 부안때보다 비민주적으로 홍보하면서 투명성과 신뢰성을 잃었다"고 경고했다.

부동층으로 분류되는 젊은층 무관심도 걱정거리. 회사원 박현조(27) 씨는 "친구나 회사 동료들과 대화에서 방폐장은 언급하지 않는다"며 "반대집회에도 사람들은 별로 모이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안전성 평가 '양호' 판정

158만㎡ 동굴 건립 계획

◆비응도는

군산시가 방폐장 후보지로 신청한 비응도는 군산시 소룡동에 있다. 과거에는 섬이었지만 군장 국가산업단지가 형성되면서 뭍과 연결됐다. 토지공사에서 1993년부터 8천199억 원을 들여 추진하고 있는 군장국가산업단지(군산지구)는 총면적이 480여만 평으로 내년 말 완공 예정이다.

하지만 충남 서천군 유부도와 7.5km 떨어져 있고 서천군 장항읍과는 12km 거리에 위치해 있어 서천군과 충남도가 반발하고 있다. 비응도는 지난 6월 16일 부지안전성 평가 발표 때 지질조건이 양호한 것으로 잠정 확인됐다. 군산시는 비응도 일대 158만㎡에 동굴방식의 처분장을 건립할 계획이다. 이상헌기자 dava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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