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주요 대학들의 논술 고사 강화 방침 발표 이후 논술 열풍이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교육부가 영어 지문 금지를 포함한 논술고사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지만 거기서 비롯된 혼란이 오히려 학부모와 학생들을 사교육으로 몰아넣는 부작용도 우려된다. 모든 것이 막막한 학부모들은 아무 생각 없이 자녀를 논술 학원에 보내지만 자칫하면 독서의 즐거움을 잃게 할 수 있고, 진실성이 결여된 글쓰기의 잔재주만 배우게 될 위험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논술을 잘 하기 위해서는 먼저 제대로 읽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문학 작품을 접할 때 그 작품의 주제, 시대적 배경, 작품의 문학사적 의미 등을 기계적으로 암기하는 것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글 전체를 온몸으로 느끼며, 줄거리에 젖어드는 독서를 해야 언어 감각이 개발되고 글쓰기 능력도 배양된다. 독서는 습관을 어떻게 들이느냐에 따라 효과가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으므로 어릴 때부터 바람직한 책읽기 습관을 갖도록 지도하는 것이 고가의 학원에 보내는 것보다 훨씬 바람직하다.
▶ 사례 1
A군은 지금 대학교 2학년생이다. 고교 때 교과서를 항상 두 권씩 샀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한 권에는 온갖 내용들 다 받아 적었다. 그리고 집에 가서는 책에 적힌 내용을 반복하여 복습했다. 선생님의 설명을 받아 적은 책을 읽을 때는 적힌 내용 외의 것이 떠오르는 경우가 드물지만, 아무것도 적지 않은 책을 읽을 때는 다양한 상상을 할 수가 있어 좋았다. 국어뿐만 아니라 영어도 두 권을 준비해 한 권에는 단어나 문장의 의미, 선생님의 보충 설명 등을 적어 넣었다. 그 책으로 내용을 정리하고 단어의 뜻을 외우고 난 뒤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책을 읽으며 학습 내용을 확인했다. A군은 문학 작품을 읽을 때도 가능하면 밑줄을 치지 않았다. 기억하고 싶거나 나중에 인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구절은 독서노트를 따로 만들어 기록했다. 책이 깨끗하면 나중에 다시 읽을 때 새로운 느낌과 생각이 든다고 한다.
▶ 사례 2
D양은 지금 대학교 1학년생으로 지난해 수능시험 언어영역에서 만점을 받았다. 특별히 과외를 했다거나 학원에 다닌 적은 없었다. 어릴 때부터 책을 읽고 난 뒤 줄거리를 요약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문학 작품은 자신이 느낀 점을 간단하게 적었지만 비문학은 반드시 그 내용을 요약했다. 평소 글을 읽을 때 먼저 전체를 통독하고 난 다음 문단별로 핵심 문장을 찾아내는 훈련을 했다. 많은 학생이 책을 읽을 때 자신의 느낌이나 견해보다는 자습서나 해설문의 내용을 보고 자신의 견해나 관점을 맞추는 데 대해 D양은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자습서나 평론을 읽기 전에 자신의 느낌이 어떤지를 중시해야 한다. 자신의 생각과 차이가 날 때는 그 이유를 생각하며 따져보고 그래도 납득이 되지 않으면 지도해 줄 수 있는 사람에게 질문하고 토론하는 습관을 가진 것이 문제집을 몇 권 더 풀어보는 것보다 낫다고 말했다.
평소 모의고사에서 고득점을 받는 수험생 가운데 실제 수능시험을 망치는 경우가 상당수다. 반면 다소 산만한 듯하지만 책읽기를 좋아하고 잡다한 것에 관심과 호기심이 많은 자유분방한 학생이 예상외로 실제 시험에서 고득점을 받는 경우가 보인다. 특히 언어영역은 독서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이 꾸준히 지적되고 있지만 이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학생은 별로 많지 않다. 언어영역 문제집을 푸는 것은 공부지만 책을 읽는 것은 공부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언어영역 고득점을 위한 3대 요소는 언어 감각, 독해력, 읽는 속도이다. 이 세 가지 능력은 문제집으로는 배양되지 않는다. 특히 문학 작품에서 많이 틀리는 학생은 독서를 통한 작품 감상 능력을 배양하지 못한 공통점이 있다. 언어 감각과 독해력만 있으면 몇 권의 문제집만 풀어도 전반적인 풀이 요령을 쉽게 터득할 수 있다. 언어영역 시험은 분석적 읽기를 통한 기교보다는 독서를 통해서 배양되는 직관력, 상상력, 추리력을 갖춘 학생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평소 글을 읽을 때 아래와 같은 점에 주의하는 습관을 들이면 언어영역뿐만 아니라 논술 실력을 높이는 데도 크게 도움이 된다. 학부모도 학생의 독서 습관을 분석한 뒤 문제가 발견되면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 분석의 궁극적 목적은 종합
고3 수험생들을 살펴보면 일년 내내 교과서와 문제집 외에 문학작품이나 기타 인문·사회과학 관련 서적을 한 권도 읽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문제집과 교과서를 이 잡듯이 분석해 뜯어보는 학습법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글 전체를 온몸으로 느끼며, 줄거리에 젖어드는 독서를 해야 예민한 언어감각이 배양된다. 줄거리에 빠져들며 통독한 후 다시 읽으며 다양하게 분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때 여러 관점에서 분석하고 통합하는 훈련을 하면 응용 가능한 논리력과 추리력을 기를 수 있다. 분석적으로 읽고 종합하는 능력이 없으면 국어는 말할 것도 없고 외국어 영역과 탐구 영역 문제의 해결에도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결국 분석의 궁극적 목표는 종합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 많이 읽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균형잡힌 다독과 정독을 통해 독해력과 탄탄한 어휘 실력을 얻을 수 있다. 참고서에 실린 문제를 다각도로 분석하는 문제풀이 위주의 학습으로는 다양한 상황에 탄력적으로 대처할 수가 없다. 또한 책을 읽을 때는 숲과 나무를 동시에 보는 훈련을 해야 한다. 많이 읽으면 독서와 관련된 거의 모든 것들이 동시에 좋아진다. 언어영역이 취약한 수험생들도 무조건 문제만 많이 풀 것이 아니라 시간을 내 감동적인 고전 작품을 몇 권 읽어보는 것이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다. 기본이 충실하면 문제풀이 기술은 단기간에 습득할 수 있다.
▶ 적절한 속도로 읽어야
글을 천천히 읽는다고 더 깊이 이해되고 빨리 읽는다고 이해도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너무 느리거나 너무 빠른 것 둘 다 문제가 있다. 글은 적절한 속도로 읽을 때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 사이의 관계가 보다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글이 의도하는 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속독 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정독을 강조해 느리게 읽는 것도 문제가 된다. 글의 종류에 따라 적절하게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 사전과 옥편은 늘 가까이에
책을 읽을 때 늘 국어사전과 옥편을 곁에 두고 새로운 어휘를 만나면 즉시 찾아보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 굳이 글을 읽다가 독서를 중단하고 사전을 찾을 필요는 없다. 읽기의 즐거움이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한 편의 글을 다 읽은 뒤 기억해 둔 단어를 찾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영어사전을 활용하지 않으면 영어 실력이 잘 오르지 않듯이 국어사전을 활용하지 않으면 언어영역 고득점은 기대하기 어렵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