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도전! Travel라이프] 배낭여행-(30)인도/길에서 만난 사람들

어딜가나 한푼 달라 손 내밀며 "박시시~"

냉정하다는 말을 숱하게 들었던 내가 오늘은 두 번이나 눈물을 쏟고 말았다. 한번은 지도를 보며 길을 찾다 쓰레기 더미에서 개들과 함께 뒤섞여 있는 소녀를 보았을 때. 다리가 없는데다 손가락 마디조차 성한 게 없는 소녀가 쓰레기 더미 속에서 찾아낸 음식을 개들과 함께 입에 넣고 있었다. 그 아이의 무표정한 눈동자를 대하는 순간 어이가 없어 하늘을 쳐다보며 펑펑 울고 말았다.

두 번째는 아침에 표 예매하러 간 기차역에서 죽은 아이를 땅에 뉘고 박시시(구걸)하는 여자를 보았을 때다. 아이 잃은 심정이 오죽하랴 싶어 아이 키우는 엄마로 분에 넘치다 싶을 만큼 많은 적선을 했는데 저녁에 기차 타러 그곳에 갔을 때까지 그 모양새 그대로 퍼질고 앉아 또 손을 벌리는 거다. 아침의 연민이 분노로 바뀌어 '어떻게 이럴 수 있냐'라고 소리지르고 싶은 거 꾹 참느라 속상해서 울고 말았다. 그들의 삶에 끼어들어 뭐하자는 건가 싶어 참긴 했지만 해도해도 너무한다 싶었다. 이 땅엔 어떻게 된 게 팔다리 성치 못한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건지, 굶주린 사람은 왜 또 그렇게 많은 건지. 한번 열린 눈물샘은 좀체 마르질 않는다.

지난날 가끔은 장그르니에의 소설 '섬'에 나오는 것처럼 어둠이 내린 밤, 문득 낯선 도시에 서 있는 나를 상상하곤 했다. 얼마나 낭만적일까 하는 생각과 더불어. 하지만 지금 깜깜한 밤, 비가 내리는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지만 별로 낭만적이지 않다. 발음도 어려운 역(무바이사라이) 이름이 나를 불안하게 하고 옆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말소리는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 내게 친숙한 소리라곤 쏟아지는 빗소리뿐.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카주라호. 비가 옴에도 아랑곳 없이 사원군을 돌아다니며 미투나상(성묘사 조각상)을 유심히 관찰한다. 리얼한 묘사의 조각상을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어쩔 수 없는 아줌마다. 남편을 위해 까마슈트라(성애지침서) 한 권 사들고 나오는데 한 아이가 기다렸다는 듯 따라오며 말을 건넨다. "나, 한국사람 좋아요. 할 말 있어요." "너 이름 뭐니?" 도대체 이 녀석이 어디서 우리말을 배웠는지 앵무새처럼 똑같은 말 내뱉는 통에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손사래를 치며 얼굴 찌푸리는데 소중한 보물인 양 지갑 깊숙이 간직하고 있던 손때 묻은 쪽지 한 장을 꺼내 보여준다. 그 쪽지엔 갈겨쓴 한국 여자아이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혀 있다. 여자친구 이름인데 한 번만 읽어달란다. '파블로'라는 이 아이는 내가 사진 찍을 때마다 나타나선 카메라 앞에 선다. 몇 장 찍어줬더니 주소를 적어주며 꼭 부쳐달란다. 나를 영원히 잊지 못할 거란 말과 함께.

"어~메~이징, 써어~프라이즈."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걸작이다. 감탄하느라 정신없는 아그라의 타지마할. 죽은 아내를 위해 이런 작품을 만들다니 샤자한의 노후 생활이 어떠했던간에 집에 있는 남자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직접 보지 않는다면 아무리 설명한다 해도 지구상의 언어가 역부족일 듯싶다. 그곳에서 남편이 바빠서 같이 못 왔다는 한국 아줌마와 여자친구, 스위스 남자아이가 감탄사를 연발한다. 물론 그들과 잠깐 데이트를 했다. 누구랑 함께 있어도 그림이 되는 그곳, 감동 그 자체다.

요즘 새로 배우고 있는 '까비 쿠시 까비 컴 예 진드기 해(때론 기쁘고 때론 슬프게, 그게 인생이라지)'를 흥얼거리며 다음 여행지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하루를 마무리한다.

노경희(주부)

사진: 1.피리 부는 아저씨의 말을 잘 듣고 피리소리에 맞춰 춤추는 코부라가 무척 귀엽다 2. 아그라 타지마할에서 '대단한데~'의 한국아줌마와 '어메이징~'의 스위스 청년 3.카주라호의 학교에서 힌디어를 배우는 중. 열심히 따라 해봤으나 너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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