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自然의 반동

밤새 기록적인 폭우를 쏟아 부으며 동해안에 적지 않은 피해를 남긴 초대형 태풍 '나비'가 빠져나간 어제 아침, 대구의 날씨는 환상적이라 할 만큼 맑았다. 높고 새파란 하늘에 눈부신 햇살과 신선한 바람, 곧 터질 듯 굵게 영근 석류에 활짝 핀 코스모스, 뿐만 아니라 세월의 땟자국이 잔뜩 낀 낡은 건물의 외벽과 지붕까지, 온갖 것들이 두루 축복을 받은 듯 청명하고 생명의 기운이 넘쳤다. 아마도 우리나라 특유의 가을 날씨 중 백미로 꼽을 만한 날이 아니었을까 싶다.

초가을 비 갠 후, 태풍 일과 후의 맑은 아침 풍경은 이처럼 아름답다.

누가 만든 것인가. 달나라를 갔다오는 인간의 능력으로, 인간 복제의 마루턱까지 넘어선 첨단 과학의 힘으로 만든 날씨가 아니다. 쉽게 하는 말로, 그저 자연의 조화, 하늘의 조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자연의 질서를 극복의 대상으로 삼아 과학을 빙자한 탐욕을 앞세워 줄기차게 자연에 대항하고 하늘에 덤빈다. 인간의 미래와 번영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시도하는 행위들의 태반은 인간을 훼손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것들이지만 이른바 신인류는 파괴와 창조를 혼용하는 궤변으로 그런 행위들을 합리화시키는 데 익숙해져 있다.

이런 인류의 오만과 탐욕은 지구 온난화라는 거대한 재앙을 만들어 냈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거역이 부메랑처럼 되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부쩍 잦아진 기상 이변과 강도 높아진 자연 재해가 그것이다.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인간으로 돌아가라는 권고이자 경고다. 미국 동남부를 휩쓴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냉혹한 경고다.

성난 카트리나는 미국 뉴올리언스를 황폐화시켰다. 지구상의 유일한 초강대국 미국의 위신을 여지없이 망가뜨리고 한쪽 해안을 초토화시킨 것이다. 카트리나는 원자폭탄도 아니고 9'11 같은 테러도 아니다. 미국의 참담하고 무력한 모습은 정치적 피아를 떠나 전 세계의 충격이다.

아직도 수습되지 않은 수많은 시신들과 부서지고 망가진 집과 시설물이 물에 잠겨 있는 도시, '재즈의 발상지'로 사랑을 받던 뉴올리언스는 그렇게 파괴되고 썩어 가는 도시로 돌변했다. 미국의 고도화된 첨단 기술로도 침수 지역의 물을 빼내는 데 최장 80일이 소요되고, 정상적인 물 공급을 복원하는 데 수년이 걸릴 것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심각한 환경 손상에다 1만여 채의 피해 주택은 복구가 불가능한 상태여서 도시를 재건해야 할지 다른 곳에 새로 지어야 할지 모를 지경이라고 한다. 검은 영혼이 살아 숨 쉬던 '재즈의 고향'은 자칫 영원히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사악한 인간이 자연을 무시하고 바다를 건너가려 할 때 신은 언제나 바람을 일으켜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 버리게 했다는 그리스 신화처럼 불안한 자연 지형을 무시하고 인간의 욕심대로 만든 도시를 앗아가 버린 것이다. 수많은 무고한 인명과 함께.

작년 말, 인도네시아와 동남아를 덮쳐 무려 25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쓰나미(지진해일)도 분노한 자연의 잔인한 반동이다. 눈앞의 이기와 탐욕을 도모하기 위해 인류가 자연과 하늘에 대해 저지른 해악의 총체적 결과가 지구 온난화로 나타났고 지구 온난화의 가공할 파괴력이 서서히 작동을 시작했다.

자연에, 하늘에 대응해 과학이란 이름으로 희롱하고 개발을 명분으로 파괴를 지속하는 한 재앙은 더 크게 다가올지 모른다. 자연의 분노를 삭이도록 해야 한다. 자연과 하늘에 대한 외경심을 되찾고 순리를 아는 데서부터 시작할 일이다.

그러려면 인간성 회복이 전제돼야 한다. 황당하게도 시정잡배보다 못한 정치지도자의 언행부터 정화돼야 한다. 국민이 준 권력을 국리민복에 쓰기는커녕 궤변과 잡설로 희롱하면서 국민의 심성을 어지럽게 만드는 한 인간성 회복의 길은 멀다. 먼저 지도자가 겸손하고 청신할 때 이 사회의 인간성 회복을 앞당길 수 있다.

태풍 지나간 연후처럼 화창하고 아름다운 아침을 맞아야 한다.

김재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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