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장마가 끝나고 찌르레기 울음소리가 요란한 무렵 경주 선도산에 올랐다. 특별히 등산을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산을 오르는 온전한 목적은 정상에 있는 마애불을 보러 가기 위해서였다. 남산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유적지들이 차로 접근하기에 큰 불편이 없었던지라 이날 무더위에 근 한 시간을 오르면서 속으론 투덜대며 올라갔다.
하지만, 막상 정상에 이르러 바위에 새겨진 조각상을 보는 순간 주체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지난 수년 동안 경주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신라 조각의 흔적들을 보아왔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인지라 무척 당혹스럽기조차 했다.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시선은 단아하게 서 있는 관음보살상에 고정되었다. 타원형의 화강암에 얼굴부분만 비교적 상세히 조각되어 있을 뿐 어깨에서 발치까지 흐르는 선은 많은 부분이 생략되어 가슴과 허리, 심지어 팔의 구분조차 모호해서 석굴암 본존과 같은 엄격한 비례감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보기에 따라선 참으로 엉성한 이 작품이 왜 이토록 깊은 감동을 주는 것일까? 그것은 조각 전체에 흐르는 긴 타원형의 선이 가냘픈 여성적 이미지를 너무나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을 뿐더러 살포시 가슴에 얹은 오른손이 어떤 절실함마저도 더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문득 생각해 보니 이런 느낌이 아주 생소한 것만은 아니었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진 몽마르트의 화가 모딜리아니(1884~1920)가 그린 여인들의 모습이 다 이러했다. 왜곡된 긴 타원형의 얼굴과 여체의 표현에 가슴 저미는 애상을 느끼며 한껏 탄성을 자아내지 않았던가?
언제부턴가 우리는 미끈한 희랍조각만을 유일한 잣대로 두고서 우리 것을 항상 만들다 만, 무언가 어설프다는 시선으로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탄하며 저무는 해가 재촉하는 하산길을 발에 걸리는 애꿎은 돌조각만 걷어차며 내려왔다.
경주 아트선재미술관 학예연구원 이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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