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캠퍼스 안에 자리한 서당과 양반가옥인 계명한학촌 툇마루에 앉으면 가을 하늘이 더 가깝다. 솔숲을 스치는 맑은 바람에 기왓골은 더욱 가지런하고, 도심의 혼잡스러움은 그만큼 더 멀리 비켜나 있다.
정체성 상실의 시대, '선비정신의 회복'이란 화두에 유념하며 청송루(靑松樓) 섬돌을 올라서니 두루마기 차림의 훈장이 서당에서 학생들과 고전을 읽고 있다. 송희준(宋熹準·47) 계명한학촌 훈장.
그는 계명한학촌을 우리 한학의 전당으로 만들어 보려는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있다. 한학촌을 우리나라 한학의 메카로 가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려한 캠퍼스 안에 위치한 한학촌 건물에 걸맞는 내용과 가치를 부여해야 합니다."
계명한학촌은 크게 3개의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그는 소개했다. 요즘 학교에 해당하는 계명서당(啓明書堂)과 양반 주거 공간인 계정헌(溪亭軒) 그리고 풍류놀이 공간인 익청정(益淸亭)이 그것이다. 이 중 계명서당은 도동서원과 도산서원을 모델로 삼고, 계정헌은 안동 하회마을 양진당과 경주 양동마을 향단을 본떠서 지었기 때문에 옛 서당과 가옥, 정자 등을 찾아 굳이 먼 곳까지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한학촌 주위의 울창한 소나무 숲과 계곡 물소리 그리고 짙어가는 산새 소리가 자연 속에 묻힌 옛 서당과 고가의 정취를 한층 더해준다. 한학촌은 가옥 구조 뿐만 아니라 생활양식도 전통방식을 따라 호롱불과 온돌을 사용하고 있어 조상들이 살았던 한옥 체험에도 그만이라는게 송 훈장의 설명이다.
한학촌은 지난해 봄 개관이래 많은 강좌를 운영해왔다. 3~6월까지의 전반기와 9~12월까지의 후반기로 나눠 논어, 명심보감, 주역, 한시 등 한문강좌와 서화, 공예, 판소리, 민요, 해금, 대금, 가야금 등 문화강좌를 열어왔다. 여름과 겨울방학 기간에는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서당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전통혼례와 전통놀이의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기도 하다.
한학촌에서는 한문 공부도 옛날 서당방식을 택하고 있다. 한문 경전을 해석, 설명하고 난 뒤 묵독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소리내어 크게 읽는 성독(聲讀)을 한다. "현대적 감각을 살리면서 옛날 서당방식으로 공부하는 것이 특징이지요." 훈장인 자신도 신구를 겸비한 한학자이다.
어릴 때 조부에게 천자문과 명심보감을 배우면서 한자와 한문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던 그는 대학시절 향교를 드나들며 사서와 고문집을 공부했고, 안동과 합천 등지의 옛 한학자와 함께 기거하며 한문학을 사사하기도 했다. 고려대에서 한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송 훈장은 그래서 틈만 나면 한자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한자를 모르고야 어떻게 한국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서양문화에만 경도되어 이기주의만 팽배한 인간상실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도 우리 고유의 선비정신을 도외시한 귀결이라는게 송 훈장의 지론이다.
'不患人之不己知요 患不知人也니라'. 즉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아보지 못함을 걱정하라'란 논어의 명구(名句)를 좋아한다는 송 훈장은 이 가르침이야 말로 인본주의의 근본이라고 강조한다. 우리가 원래 지니고 살았던 이같은 삶의 철학이 역설적으로 서양사회를 유지해온 도덕적 근간이기도 하다는 것을 눈여겨 보라는 것이다. 그는 최근 중국 송나라 때의 대표적인 성리학서인 심경(心經)에 대한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견해와 논설문을 해제한 '심경주해총편 및 보유' 10권을 간행하기도 했다.
송 훈장은 계명한학촌에 대학과 지역사회의 장기적인 관심을 거듭 촉구했다. "꾸준한 고전공부와 전통문화 강좌를 통해 단절된 과거와 현재를 잇고, 잃어버린 아름다운 우리 것을 되찾아야 합니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사진 : 꾸준한 고전공부와 전통문화 강좌를 강조하는 송희준 계명한학촌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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